[서믿음의 책 한 모금] 광고인 박웅현의 도끼질 독서법, ‘책은 도끼다’
[서믿음의 책 한 모금] 광고인 박웅현의 도끼질 독서법, ‘책은 도끼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4.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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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경선 Pd]
박웅현 TBWA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 [사진=안경선 PD]

광고인 박웅현. 1961년 경기도 동두천에서 태어나 고려대에서 신문방송학, 뉴욕대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석사)을 전공했다. 1987년 굴지의 광고사 제일기획에 입사, 2004년 TBWA코리아로 이직해 현재 크리에이티브 대표로 재직 중이다. 천상 광고인 삶의 궤적이지만, 그를 애독가로 기억하는 대중이 적지 않다. 책에서 영감을 얻는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에 독서를 권해왔고, 『여덟 단어』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일하는 사람의 생각』 등 책에 관한 저작물을 다수 출간하기도 했다. 그중 2011년 출간되어 지금껏 120쇄를 넘긴 『책은 도끼다』(북하우스)는 책의 재미를 일깨우는 독서 안내서로 호평받는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책은 박웅현 머릿속 도끼질의 흔적을 담고 있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좋은 부분들, 감동받은 부분들에 줄을 치고 한권의 책 읽기가 끝나면 따로 옮겨놓는 작업을 한다. (이 책의) 목표는 이런 방식의 책 읽기를 통해 제가 느낀 ‘울림’을 여러분께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책에는 저자가 인상 깊게 ‘울림’ 있는 문장이 빽빽이 담겼다.

먼저 이철수 판화가의 『마른풀의 노래』(학고재). “땅콩을 거두웠다.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덜된 놈! 덜떨어진 놈.” 박웅현은 판화 ‘땅콩’의 작품소개에 주목하며 “익으면 떨어지는데, 익지 않아 ‘덜떨어진다’는 겁니다. 이 한 줄이 자연현상이 인간사로 넘어오는 순간입니다. 현기증 나는 차이가 느껴지시나요?”라고 되묻는다. 움켜쥐고 집착하는 인간의 미성숙을 땅콩의 설익음과 결부한 대목이 참신한 느낌을 자아낸다.

“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판화 ‘가을사과’의 설명에 관해서는 “사과가 떨어진 걸 만유인력 때문이라고 기어이 과학적으로 밝혀내고야 마는 것은 서양의 장점입니다. 그리고 동양의 장점은 때가 되어서 떨어지는 걸 왜 안달복달 난리들이야 하며 자연을 아우르는 철학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박웅현은 미세한 울림을 예리하게 포착해 모두가 알아듣기 쉽게 감동을 증폭해 전달한다.

“식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밑동에서 살아 있는 부분은 지름의 10분의 1정도에 해당하는 바깥쪽이고 그 안쪽은 대부분 생명의 기능이 소멸한 상태라고 한다.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있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 이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존재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버티어준다.” -김훈 『자전거 여행』(문학동네) 中

형용사와 부사 사용을 절제하는 정제된 문체를 구사하는 김훈 작가 역시 저자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 인물이다. 저자는 “지금 생명 활동에는 아무런 관여를 하고 있지 않지만, 중심부가 있지 않으면 나무가 서 있을 수가 없다”며 “예전에 ‘세월에 저항하면 주름이 생기고 세월을 받아들이면 연륜이 생긴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것은 제가 썼던, 제가 느꼈던 것과도 일맥상통해서 다시 들여다보게 된 구절이다. 이렇게 나의 생각과 같은 접점을 발견하는 기쁨도 독서의 기쁨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 알랭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은행나무) 中

어느 인터뷰에서 “질투 나는 언어 천재”라고 소개했던 알랭드 보통을 통해서는 사랑의 권력성에 천착한다. 그는 “뭘 더 하고 싶은 쪽이 상대를 더 사랑한다는 겁니다. 사실 덜 사랑하는 쪽은 상관이 없는 거죠”라며 “그래서 사랑에서의 권력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것이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처럼 책 속 아포리즘(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의 울림과 감동을 받아먹기 쉽게 쪼개 건네면서 책과 독자의 만남을 주선한다. ‘이 책 참 괜찮은데, 한 번 읽어보지 않을래?’ ‘이렇게 기막힌 감동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래도 안 읽을래?’라는 강권에 절판된 책이 재판되기도 했다. 앞서 <독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자는 “『책은 도끼다』는 책을 읽은 독자가 그 안에 소개된 책을 사게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 목적이 꽤 달성됐다”며 “절판됐던 이철수 화백의 판화가 다시 팔리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일 년에 30~40권에 달하는 독서량이 많지 않다며 자신을 다독가가 아닌 애독가로 소개하는 박웅현. 그는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 읽어” 얻은 울림과 감동을 책 『책은 도끼다』에 담았다. 2016년에는 후속작인 『다시, 책은 도끼다』를 출간했다. 책이 인생에 끼친 영향을 다룬 게 전작이라면 후속작은 어떻게 책을 읽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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