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나리들, 시골 환자 신음소리 들어나봤나요”
“복지부 나리들, 시골 환자 신음소리 들어나봤나요”
  • 안지섭 기자
  • 승인 2021.04.2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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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아프면 병원에 간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 여전히 존재한다. 사람이 몰려 있는 도시에는 병원들이 경쟁을 벌일 정도로 즐비하지만,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의사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의료 취약 지역에는 왕진 의사가 환자의 거처에 산 넘고 강 건너 찾아가 진료를 해야 한다.

책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는 강원도에서 근무하는 왕진의사 양창모씨의 경험이 가득 담겨있다. 의사 한명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지만 한국의 의료 현실에 관한 진중한 고민과 설득력 있는 주장이 곳곳에 배어있다. 춘천에서 10년간 일했던 병원을 그만두고 왕진을 다닌 저자는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질병’이지만 왕진에서 마주하는 것은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책은 지역의 의료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불거리는 도로 때문에 5년 동안 병원을 찾지 못한 홍 할머니의 사례는 흥미롭다. 저자는 환자가 멀미 때문에 병원에 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고작 멀미 때문…?”이라며 의아해했지만, 왕진을 다녀오는 길에 속이 울렁거려 차를 세우고 나서야 노인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한발 나아가 “홍 할머니로 하여금 무릎 관절염 치료를 포기하게 만든 것은 실은 멀미가 아니었다”며 “환자가 있는 곳에 의사가 찾아올 수 없게 되어 있는 기이한 시스템 때문이었다”고 밝힌다.

저자의 이런 경험은 한국 사회의 지역 의료 문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정부가 지역 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지역 의대 신입생 증원에 관한 안은 현업에 종사하는 다수 의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지역에 근무하는 의사들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는 ‘의료기관이 의료인력에게 지급하는 비용’인 의료수가 조정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저자는 당시 공론화된 ‘지역의사제’라는 명칭은 ‘공공의사제’로 수정돼야 하며 문제의 본질은 지역에 머물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공공의료에 머물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에 있다고 꼬집는다. 상대적으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춘천에서도 이미 의사들은 많고 여러 병원들이 있지만 도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마을까지 가지 못한다는 것을 사례로 든다. 의사의 이기심 때문이 아닌 공공의료의 공백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지적이다.

의협의 대표자들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는다. 지역의사제에 관한 논의를 공공의사제로 바꿔야 했는데 투쟁으로만 일관했다는 것이다. 의협의 극한 투쟁은 의사들이 자기의 밥그릇만 지키는 사람들로 여겨지게 했으며, 그로 인해 동네 의사들이 공공의료 문제의 주범이 됐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공공의료의 결여가 누군가에게는 추상적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구체적인 고통이었다”며 “행정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여기에 와서 현장을 보는 일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골집에 갇혀 누워 있는 분들의 목소리는 결코 복지 공무원의 책상머리까지 들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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