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진보적이지만 나약하고, 민비는 지적이지만 후계 두려워해”
“고종은 진보적이지만 나약하고, 민비는 지적이지만 후계 두려워해”
  • 황현탁
  • 승인 2021.04.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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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7-『조선과 이웃나라들』
[책으로 떠나는 여행]
<독서신문>은 여행과 관광이 여의치 않은 코로나 시대에, 고전이나 여행기에서 기술된 풍광과 문화를 소개하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칼럼을 연재합니다. 칼럼은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라는 여행기의 저자이며,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문화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한 황현탁씨가 맡습니다.
황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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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조선 관리들, 중국 사대주의뿐 바깥 물정에는 관심 없어”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 여행 『하멜표류기』]
⑤“사람을 파는 죄와 죽이는 죄는 다르지 않다” [황현탁의 책으로 떠나는여행-혜초의 『왕오천축국전』]
④ 운명에는 겸손, 삶은 치열하게-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황현탁의 책으로 읽는 여행]
③ 속좁기로는 1등인 그리스 신들-호메로스의 『일리아스』 
② 존 번연의 ‘꿈’속의 천국 여행 『천로역정』 
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숫자 12가 의미하는 것은 

『조선과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은 영국 여행작가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이 쓴 ‘조선의 민족과 생활과 외교 및 미래’에 관한 여행기이자 수상록이다. 그는 1894~1897 기간 동안 네 차례 한국을 찾았는데, 제물포-서울, 한강(서울-영월), 금강산, 원산, 만주, 개성과 평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프스크일대를 여행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참고할만한 서적들이 없어 조선은 글을 쓰기에 어려운 나라”라며 특성을 알기 위해 여행에 나섰다고 밝힌다. 이 책으로 인해 19세기 말에서야 은둔의 왕국(Hermit Kingdom) 조선이 다른 나라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출판사 집문당에서 펴낸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개정판) 표지

비숍은 『미국에 온 영국여인』, 『하와이 군도』 『일본의 오지』 등을 출판해 이름이 알려져 있었는데, 늦게 결혼한 남편과의 짧은 결혼 생활(1881~1886) 이후 우울증과 고독에 시달리다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다. 그녀가 한국을 방문했던 시기는 갑오동학농민혁명, 청일전쟁, 갑오경장,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 조선왕조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때였다.

그는 을미사변 전후로 왕을 수차례 알현하였으며, 왕과 왕비 및 세자에 대한 인상도 언급하고 있다. 또 영국인으로서 조선에서 영국의 국익 확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언급하고 있다. 그녀는 조선을 “중국을 우스꽝스럽게 따라 하기만 하며, 반쯤은 겁에 질리고 정신이 완전히 빠진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독립국가”라며 첫인상을 “죄인을 매질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관아가 악의 소굴”이라고 언급한다. 제물포에서 서울로 이동하면서 ‘도로라는 단어는 있지만 실제 도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서울 하수도는 오물로 가득 차 있으며, 반나체 어린애들과 피부병이 오른 채 눈이 반쯤 감긴 큰 개들의 놀이터로, 개는 서울의 유일한 청소부’라고까지 말한다. 조선의 부패상을 언급하면서 “관리는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든가, “조선 관료의 부정행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가 아홉 개인 뱀 히드라의 머리와 같아서 아무리 잘라 내도 끝이 없다”고 말한다.

책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 담긴 당시 조선인 사진
비숍 여행단 일행. 말을 탄 이가 작가 비숍이다.

조선 여인이 숨기를 잘하는 것은 미인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얘기도 한다. 그런 한편으로 밤의 정적을 깨는 다듬이 소리, 남산의 아름다운 언덕, 고색창연한 오얏나무 왕궁 등 서울의 정취를 얘기한다. 일상과 관련해서는 ‘때 묻은 흰옷을 입은 인부들이 끊임없이 짐을 나르고, 빈민굴 한쪽에서는 삶의 즐거움을 잃은 더러운 아이들과 찌꺼기를 두고 힘없이 으르렁거리는 갈색의 개들이 있었다’고 묘사한다. 수도 서울에는 ‘예술품이 없고 골동품이 드물며, 공원도 없고 왕의 거동 외에는 볼만한 것이 없으며 극장도 없다.’고 서양기준으로 재단한다. 또 ‘미신 때문에 묘비 하나 남은 것이 없다’든가, ‘군중은 더러웠고 거리는 지저분하고 쇠락해 있었다, 과음은 조선의 독특한 모습, 외국인을 보는 댓가로 달걀을 가져왔다’고 하는 등 자신의 체험을 기술하고 있다. 5주 동안 한강을 여행하는 동안 ‘단 1개의 다리도 없다’, 정령을 숭배하는 사당, 서낭당의 돌무더기, 장승을 목격한 얘기 등을 언급하거나, 한강의 아름다움은 도담에서 절정을 이룬다, ‘자식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 여겨, 남근상이 많고 사당에서 절도하고 시주도 바친다고 전한다.

금강산 여행 중에는 단발령이나 장안사 등 사찰을 소개하고, ‘조선에서 가장 장엄한 광경은 1만2,000봉으로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그와 같은 아름다운 장관을 본 적이 없다’든가, 금강산의 산림과 환상적인 산봉우리를 보고는 “이 광대한 협곡과 아름다움의 모든 요소는 그저 나그네의 찬탄을 불러일으킬 따름이다”라고 한다. 표훈사의 범종 소리는 ‘이제까지 내가 들어보지 못한 음조를 냈다’며 새벽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기도가 잠보다 낫다’고 알려주었다고 적고 있다. 그녀는 금강산 유람 중 끈으로 만든 짚신을 신어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면서, 바위 길에서의 짚신의 유용함도 소개한다.

조선 사람은 대식가로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포만감을 즐기기 위해 많이 먹으며, 트림을 하거나 손으로 배를 두드리면서 포만감을 드러낸다면서 식사의 특징은 질이 아니라 양임을 여러 번 관찰하였다고 한다. 또 ‘조선 사람은 집(house)은 있으나 가정(home)은 없다’면서, 가정에서의 여성의 지위나 부부관계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고종에 대해서는 ‘키가 작고 누르스름한 얼굴, 지극히 평범한 사람’,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 성격적으로 나약, 철저함과 집요함의 결여’, ‘외국에 대해 반감, 선교에 대해 우호적, 통치력 미숙, 선량하고 사상적으로 진보적’이라 평가한다. 민비에 대해서는 ‘눈은 냉철하고 예리했으며, 지성미를 풍기고’, ‘후궁의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묻혀 살았다’, ‘우아하고 매력적인 예의범절과 사려 깊은 호의, 명랑하고 예리함, 놀랄만한 화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대원군 등 정적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기술한다. 세자는 비만하고 의지가 박약해 보였고, 대원군은 유능하지만 탐욕스러우며 무법자 같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나는 조선이 희망 없고 무기력하고 한심스럽고 애처로운 존재이며, 어떤 큰 힘에 따라 튕겨 다니는 배드민턴 공 같은 사람들의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정치적 혼란과 관리의 수탈을 피해 만주나 시베리아로 떠나 그곳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수 만 명의 조선 사람과, 중국인들과의 야채시장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하여 상권을 장악한 하바로프스크에서의 상인들을 보고는 생각을 바꾼다. 비숍은 조선에서는 “열등민족이고 삶의 희망이 없는 존재‘로 인식했으나, “시베리아에 정착한 조선 사람의 품성과 근면성은 장래 그 민족에게 훌륭한 가능성이 기대된다”고 까지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고 한다. 조선 사람의 게으름을 기질문제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출판사 집문당에서 펴낸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개정판) 표지
비숍이 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원본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는 구한말 격동기의 역사기록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제3자적 입장에서 변화의 소용돌이를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여행을 할 때에도 영국 공사관을 통하여 발급받은 관자(關子, 관청의 허가서)를 소지하였으나, 외국인을 접촉해보지 않은 조선 사람들이 편의를 봐줄 수 없다하여 통역을 통해 모두 대가를 지불하거나, 그도 안 될 경우에는 동행하던 일행들과 함께 나룻배를 직접 몰기도 하였다. 외교경로를 통해 얻거나 들은 상당한 정보를 책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민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나 러시아 공사관으로의 아관파천 등이 그런 것들이며, 한말의 교역현황이나 관보의 발표문, 조약문 등도 수록하고 있다.

여섯 번 왕을 알현한 비숍은 왕이 “영국은 우리의 가장 우호적인 친구”라는 말을 해, 감동받았으며 ‘국운의 쇠퇴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일전쟁의 결과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이 종식된 것을 ‘조선의 독립을 선물한 일본’이라고 기술하거나, ‘사전에 모든 개혁조치를 일본이 주도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조선의 구제도가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일본이 자신의 노력에 충분히 정직했다고 생각 한다. 경험이 부족했고 거칠고 분별없었으며 적대감정을 자극했지만 일본은 공정하게 일을 진척시켰고 유용하고 중요한 개혁을 완료했다’고 하는 등 독립주권국가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강압적 조치’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기록하고 있다.

비숍은 부패한 관리, 지저분한 환경, 낙후된 제도 등 개선과 개혁이 필요한 분야가 수두룩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이 고향을 등지고 만주나 시베리아로 이주하였다고 본다. 또 영국이 기여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능동적 참여를 포기했다’는 한마디로, 자신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처음 느꼈던 혐오감이 애정에 가까운 관심으로 바뀌었지만 떠나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는 표현으로 조선 및 민중과의 작별을 고했다. 외교관은 아니지만 왕을 여섯 번이나 알현하고 영국을 포함한 각국 외교관이나 선교사들과의 친분 등을 고려하면 ‘책을 쓰고 출판하는 것 이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많았을 것이지만 그녀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비숍이 조선을 다녀간 뒤 1세기 후에 나는 파키스탄, 미국, 일본, 영국에서 15년간 외교관 활동을 하고, 때로는 그녀를 도왔던 당시 영국 공사관의 외교관처럼 현지를 방문하는 한국 인사들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나거나 회의에 참석하고 결과를 본국에 보고하기도 하였다. 어느 국가에서는 그녀가 느꼈던 것과 같은 아쉬움이나, ‘나라면, 우리라면...’하는 감정을 갖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가, 우리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었던 것처럼 비숍 역시 ‘조선과 백성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일’에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를 질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 조정에서 그런 인물을 고용하여 백성들을 교화하고 개혁하는 일에 매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남산이나 궁궐, 한강이나 금강산 등 자연의 아름다움은 칭송하면서도 도시와 주거의 불편함, 위생상태의 불결함을 곳곳에서 피력하고 있다. 또 외국인 접촉기회가 없었던 시골지역에서의 주민들의 호기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거나 때로는 배척당한 경험까지도 적고 있다. 조선에서 열강들이 각축하고 있을 때까지도 백성들은 고사하고 궁궐과 조정의 누구도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걱정하고 분골쇄신했던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비숍은 내부로부터 개혁이 불가능할 때 외부로부터라도 개혁되어야 한다거나, 군주의 권력은 엄중하고도 영원한 헌법의 아래에 놓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 근세사를 아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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