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탐방②] 허스토리 “모든 여성의 이야기는 역사다”
[출판사 탐방②] 허스토리 “모든 여성의 이야기는 역사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4.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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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취향이 제각각이듯 출판사도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닙니다. 실용의 가치를 바탕으로 독자의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가하면 문학을 통해 인간의 삶을 깊이 탐구하기도 합니다. 또 페미니즘의 기치 아래 성평등을 도모하기도 합니다. 출판사의 다채로운 이모저모. 그 매력을 집중탐구합니다.
허스토리의 류소연 대표(왼쪽)와 주승리 팀장(오른쪽) [사진=안경선 PD]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모든 여성의 이야기는 역사다’. 2016년 12월에 설립된 도서출판 ‘허스토리’의 슬로건이다. 공동 창업자인 류소연(31) 대표와 주승리(29) 팀장은 같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동기 사이다. 그들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출판사를 차리게 됐다.

허스토리의 책들은 출간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들이 많다. 전문분야는 여성과 소수자이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여 개인사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중점을 둔다. 2017년 8월부터는 서울 관악구에서 ‘달리, 봄’이라는 책방도 운영 중이다. ‘다르게 보자’라는 뜻을 지닌 책방 역시 페미니즘 서적 위주로 비치돼 있다.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페미니즘 책방 ‘달리, 봄’ [사진=안경선 PD]
[사진=안경선 PD]
[사진=안경선 PD]

류 대표는 “문득 할머니 얘기를 기록해보고 싶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고, 특히 기록되지 못한 여성들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개인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았고, 이걸 일로써 해보고 싶어 출판사와 책방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 팀장은 “사회적 발언권이 약한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돌려주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며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 중에 가장 큰 범주로 묶을 수 있는 집단이 바로 여성”이라고 말했다. 허스토리는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로 지평을 넓힐 수 있다고 믿는다.

허스토리의 특징 중 하나는 구술생애사 방식을 기반으로 책을 제작한다는 점이다. 류 대표는 “개인마다 저마다의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동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이야기하고, 듣는 지가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화자에게는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청자에게는 ‘맞아. 나도 비슷한 얘기가 있었지.’ ‘나의 엄마도 그럴 수 있겠다.’ 등 나와 나의 주변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한다”며 “구술생애사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에서 그런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사진=안경선 PD]

이제껏 허스토리가 출간한 책들은 『그 여자의 자서전』 『찌찌가 뭐라고』 『이야기, 멀고도 가까운』 『여성 청년 정치』 등이다. 각각의 책들은 모두 ‘엄마’ ‘탈브라 지향자들’ ‘여성 싱어송라이터’ ‘여성 정치인’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 삶의 단독자로서 말하고, 행동한다. 특히 『그 여자의 자서전』 경우 독자들이 엄마의 이야기를 직접 기록할 수 있도록 가이드북과 워크북 형태로 제작된 독특한 형태의 책이다. 구술생애사 방법론을 기초로 엄마를 인터뷰하고, 자료를 정리해서 자서전으로 엮어 볼 수 있다. 독자들이 엄마의 인생을 체험하게 하는 책인 셈이다.

류소연 대표 [사진=안경선 PD]

이에 대해 류 대표는 “구술 자서전 만드는 일을 출판사 수익사업으로 진행했는데, 이 작업을 독자들이 스스로 해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면 어떨까 해서 ‘엄마 자서전 만들기 워크숍’을 열었다. 그걸 계속 진행하다가 『그 여자의 자서전』이라는 책을 만들게 됐다”며 “책으로 만들면 좀 더 많은 독자들이 자서전 제작을 유사한 형태로 시도 또는 체험해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얻어가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 책으로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실 요즘처럼 모든 정보가 이미지와 영상의 형태로 전환되는 시기에 책의 질감과 활자의 가치에 집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소규모의 출판사와 책방을 동시에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가 덮치면서 ‘5인 이상 모임 금지’ 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대돼 작은 책방들의 주요 수익 통로 중 하나인 글쓰기 수업, 독서 모임, 강연 등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게 됐다. 신간 발행 부수 역시 줄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최근 발표한 ‘2020출판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출간된 신간 부수는 약 8165만부로 2019년의 9979만부보다 18% 감소했다.

주승리 팀장 [사진=안경선 PD]

주 팀장은 “허스토리는 작은 출판사이기 때문에 책을 판매하는 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책방의 경우에는 독서 모임을 열어 부가적인 수입을 창출했는데 코로나19로 오프라인 방문객 수가 줄면서 매출도 급감했다”고 밝혔다. 이어 “허스토리에서 출간되는 책은 거의 크라우드 펀딩이나 정부와 지차체 등에서 실시하는 출판 제작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며 “소규모의 출판사들이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허스토리는 여성들이 주로 종사하는 직종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준비 중이다. 책의 주인공들은 간호사, 유치원 교사, 콜센터 노동자, 요양보호사 등으로 모두 일반인이다.

류소연 대표와 주승리 팀장 [사진=안경선 PD]

인터뷰 말미에 다시, 왜 하필 책인지 물었다. 주 팀장은 “예부터 책이라는 매체는 가진 자와 배운 자 등 권력자들의 소유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책에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권력 구조에 균열을 가하는 일처럼 느껴졌다”고 밝혔다.

류 대표는 “책이라는 매체가 다른 예술과의 협업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가령 『이야기, 멀고도 가까운』이라는 책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 책에 일러스트와 음악 CD를 함께 수록해서 독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게 제작했다”며 “음악, 그림, 영상 등 책과 효과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매체들이 무엇이 있는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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