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 그 책] 부사와 형용사를 용납하지 않는 김훈의 작품들
[이 작가 그 책] 부사와 형용사를 용납하지 않는 김훈의 작품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3.07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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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소설가 김훈은 1948년 소설가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던 해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고 세 살 때 6·25 전쟁이 발발했다. 피난처인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배고픔에 지친 어린이들이 미군을 향해 이른바 ‘기브미 초콜릿’을 외치던 시절이다. 그의 유년기를 알 수 있는 일화 한 토막. 그는 미군이 초반에 장난삼아 하나씩 던지는 초콜릿은 포기하고 기회를 엿보다 초콜릿이 통째로 날아오는 순간을 포착해 잽싸게 낚아챘다고 한다. 초콜릿을 들고 들어올 때면 집안 어른들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김훈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 가난은 시대 전체의 가난이었다”며 “초콜릿을 이쪽저쪽으로 던져주던 자가 악한 것이지 초콜릿을 얻어먹은 게 수치스러운 일은 아니다”고 술회했다.

김훈은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1973년 <한국일보> 기자직에 응모해 합격한다. 당시 장기영 <한국일보> 창업주가 “눈에 불량기가 있으니 기자를 할 만하다”며 채용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기자가 된 김훈이 담당한 가욋일 중 하나는 (당시 <한국일보>에 연재되던) 『장길산』 원고를 펑크 내고 잠적한 황석영 잡아 오기였는데, 과거 예능 프로에 출연한 황석영은 “지금도 김훈이 술에 취하면 그때의 원한을 언급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훈은 무리 지음을 혐오하고, 배제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덕에 30년간 언론계에 몸담는 사이 스무 번 사표를 냈고, 여섯 번 직장을 바꿨다. 그는 <한국일보>→<TV저널>→<시사저널>→<국민일보>→<한국일보>→<시사저널>→<한겨레>를 오갔다. 2000년에는 어느 방송에서 전한 여성 비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 문제가 돼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그만두고 두 번째 소설 집필에 돌입해 이듬해 생애 두 번째 소설을 발표한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칼의 노래』(문학동네)이다. 해당 소설은 명예로운 죽음을 희망하지만, 내부 정쟁에 휩싸여 비본질적인 문제와 사투하는 충무공 이순신의 고뇌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소설의 시대 배경은 원균이 이순신을 대신해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차지한 1597년부터 노량해전으로 이순신이 전사하는 1598년간 약 2년의 시기. 학창 시절 『난중일기』에 매료된 바 있는 김훈은 특유의 힘있게 몰아치는 문체로 역사를 서술했다. 특히 부드럽게 느껴지는 한글 표현이 시류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딱딱한 느낌의 한문체 표현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이제는 거의 유실된 것이나 다름없는 한자 문학의 미를 현대문학적으로 되살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당시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단은 “오랫동안 반복의 늪 속을 부유하고 있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심사평을 내놓았다.

『칼의 노래』가 출간된 당해(2001년) 판매량은 10만부 가량이었는데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천에 힘입어 판매량이 급증했다. 2003년 MBC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노 대통령의 추천, 이후 2004년 노 대통령이 탄핵 가결로 직무 정지당했을 당시 감명 깊게 읽었던 책으로 또다시 소개하면서 2004년에만 50만부, 2007년까지 100만부 이상 판매됐다.

김훈이 쓴 산문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은 『자전거 여행』(문학동네)이다. 자전거 애호가로 알려진 김훈은 형용사와 부사 사용을 최소화한 정제된 문체로 사물의 객관적 실체를 드러낸다. 그는 여수 돌산도 향일암, 남해안 경작지, 여수의 여러 무덤, 양양 선림원지 등을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자연의 모습을 활자에 담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삶을 통찰한다. 작가 특유의 ‘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으로 표현한 대상 중 하나는 동백꽃.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라는 대목에서는 평소 무리 지음을 배격했던 작가의 지론이 엿보인다.

또한 『자전거 여행』의 묘미는 낙화 묘사이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버린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뚝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한편의 긴 시(詩)와 같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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