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가 그 책] ‘하늘이 내려준 재능’ 움베르토 에코의 책
[이 작가 그 책] ‘하늘이 내려준 재능’ 움베르토 에코의 책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2.27 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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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20세기를 대표하는 기호학자이자 미학자, 소설가, 철학자, 역사학자, 인류학자, 문학평론가... 움베르토 에코를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수식어가 필요하다. 1932년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토리노 대학에 입학하지만, 중세 철학과 문학으로 전공을 바꿔 22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교단에 서면서 교육자와 인문학자의 길을 걷는다.

‘하늘이 내려 준 재능’(ex caelis oblatus)이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성(姓:에코)처럼 움베르토의 재능은 실로 탁월했다. 그는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로 한 번 읽은 책의 내용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으며, 교수로 재직한 볼로냐 대학 도서관에서 봤던 책 위치를 모두 기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등 9개 이상의 언어에 능통했고, 35개 이상의 박사학위를 소유했다. 저술 작업도 왕성했는데, 24세에 첫 책을 낸 이후 죽기 직전까지 언어학과 기호학의 전문영역부터 영화, 소설, 만화 등 대중영역을 종횡무진하며 날카로우면서도 재기발랄한 유머로 지식을 재단했다.

그의 작품은 박학다식한 지식의 보고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게 1980년 이탈리에서 출간한 소설 『장미의 이름』. 소설은 1327년 영국 수도사 윌리엄이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을 조명하며 인간의 어두운 일면을 양지로 끌어낸다. 저자는 해박한 인류학적 지식과 기호학 이론을 통해 수사들의 그릇된 행태를 다각도로 해부한다. 황제와 세속권 다툼을 벌이거나, 굶주린 빈농가(家)의 처녀를 먹을 것으로 꾀어 희롱하고, 그도 아니면 ‘희극의 기쁨’이 신앙심을 약화한다는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금서로 지정한 수사들의 그릇된 인식을 고발한다. 1986년 출판사 ‘열린책들’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을 당시에는 눈길을 끌지 못했으나, 1989년 숀 코너리 주연의 동명의 영화 <장미의 이름>이 개봉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에코의 저작물을 압축적으로 감상하고 싶은 이에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열린책들)을 권한다. 해당 도서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 소설과 동화를 제외한 철학, 기호학, 문학 이론, 문화 비평, 칼럼 등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 대다수가 수록된 작품으로 40여명이 5년간 매달려 완성했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밝힌 제작비만 무려 4억원.

책에서 에코는 다채로운 면모를 내비친다. 분석적인 논객이 돼 사회 폐부를 찌르는가 하면, 익살꾼이 돼 썰렁한 유머를 꺼내놓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동물의 생존권을 존중한답시고 동물을 인격화하고 아이들의 친구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 문제다. 사람들은 어떤 동물이 본능에 따라서 잔인하게 다른 동물을 잡아먹을지라도 이 지구상에 생존할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동물의 존재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기존 교육체계를 비판한 셈이다. 또 죽음을 제대로 대비하는 법을 묻는 제자에게 세상의 긍정적인 면을 거론하면서 “이승을 떠나는 참에, 그렇게 멋진 일들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정말 견딜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중략) “모든 사람들이 다 바보라는 것을 확신하라”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기도 한다.

『제0호』(열린책들)는 에코가 2016년 췌장암으로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펴낸 소설로 정보 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내던진다. 소설의 배경은 1992년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세력가를 배후에 둔 (창간을 앞둔) 신문사의 편집부. 정·재계 주요 인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세력가의 ‘협박 수단’인 해당 신문사에선 황색신문의 전형적인 추태가 여과 없이 자행된다. 거물들을 위협할 뉴스를 신문에 담아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려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언론과 가진 자들의 유희를 희화화했다

“책은 생명 보험이며, 불사(不死)를 위한 약간의 선금”이라며 독서의 가치를 높이 샀던 움베르토 에코는 과거 “한국은 내가 쓴 모든 책을 번역한 몇 안 되는 예외적 나라”라며 고마움을 표한 바 있다. 그가 유영했던 책의 세계로의 여행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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