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의 거짓말... 정치의 함정에 빠진 것인가
대법원장의 거짓말... 정치의 함정에 빠진 것인가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2.24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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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거짓말 논란 파장이 커지고 있다. 헌정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 대상으로 지목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퇴 요청을 거절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가, 임 부장판사의 사직을 반려했을 당시의 녹취파일이 공개된 데 따른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뒤늦게 해당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그 내용 또한 거짓말로 점철돼 ‘거짓말 돌려막기’라는 질타를 받고있다.

사건의 발단은 2014년 2월, 일본 <산케이 신문>의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이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밀회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임 판사는 해당 사건 담당 판사를 불러 밀회 의혹이 허위로 밝혀질 경우 가토 지국장을 질책하는 내용을 판결문에 포함시킬 것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해당 행위를 과도한 재판 개입에 따른 ‘사법농단’으로 간주한 더불어민주당은 임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했다. 당시 임 판사는 건강상의 이유로 김 대법원장에게 사의를 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결국 지난 4일 국회를 통과해 오는 26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은 이 과정에서 되풀이됐다. 먼저 사직서 관련. 김 대법원장은 당초 임 판사의 사직을 반려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뒤늦게 공개된 녹취록에는 (임 판사를 향해)“지금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고 말했다. 이 발언은 즉각 임 판사에 대한 사표 반려가 국회를 의식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즉각 야당과 법조계로부터 “3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위배했다”는 비난을 초래했다.

문제가 확산되자 김 대법원장은 사과문을 통해 “해당 법관의 사표 수리 결정은 법 규정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임 판사의 사표 반려의 근거가 된 규정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법률적인 것은 차치(한다)”며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한다)”는 녹취록의 내용과 상반된다.

복잡한 현실 세계에서 정치인이나 외교관들에게 일정부분의 거짓말은 때로 당위성을 갖기도 한다.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정치가의 모든 열망은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는 것이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치가는 서정 시인이 아니다. 최소한 어느 정도 범위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정치가의 의무다”라고 말했다. 전직 프랑스 외교관이자 책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은 “외교관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교술을 발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회고록을 통해 “정치가는 어쩔 수 없이 진실을 은폐하거나 심지어 왜곡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은 ‘거짓 속에서 진실을 가려야 하는’ 법관의 거짓말이라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치인는 대중의 지지를 얻어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외교관은 자국의 이익 추구를 위해 경우에 따라 거짓의 힘을 빌린다지만, 법관은 다르다. 철저히 법의 원칙에 의거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고, 이는 어떤 경우에든 지켜져야 한다. 지난 22일 퇴임한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저서 『법복은 유니폼이 아니다』에서 “법관(임성근 부장판사)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권력분립의 원칙과 법관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헌법의 대원칙을 무너뜨렸으며, 거짓말을 한 대법원장이라는 치욕에 휩싸이게 됐다”고 김 대법원장을 직격했다.

책 『오늘도 뇌는 거짓말을 한다』의 저자 알베르 무케베르는 “우리는 우리가 한 선택을 기억하지 않는다. 다만 그 선택을 정당화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장의 거짓말에, 거짓말에 관한 거짓 해명에 사법불신의 정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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