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아이의 책, 그리고 내게도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아이의 책, 그리고 내게도
  • 스미레
  • 승인 2021.02.1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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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의 취향 교집합이 다보록해진 요즘에도 타협이 어려운 두 가지가 있다. 일단 빵 취향이 그렇다. 다정히 빵집에 들어선 우리 모자는 쟁반을 들기 무섭게 각자의 빵, 그러니까 나는 포근한 마들렌을, 아이는 딱딱한 시골 빵을 집기 바쁘다. 책 취향도 그렇다. 아이는 내가 안고 살던 명작동화에는 신기할 정도로 열이 적다. ‘옛날 옛적에’가 아닌 옆집에서 일어날 법한 현실적이고 유쾌한 이야기를 더욱 찾는다. 빵집에서 그랬듯 서점에서도 나라면 그냥 지나쳤을 법한 책들이 아이 바구니에 소복하다.

패딩턴이 있어 다행이지 싶은 날은 이런 날이다. 해가 길고 날은 궂은데, 아이와 내 마음의 방향이 달라 포옥 한숨만 나오는 날. 그러다 털레털레 일어난 아이가 틀림없이 패딩턴을 뽑아 오는 날. 얇포롬한 책 몇 권에 엄마와 아이의 마음이 환하게 포개지는 그런 날.

 

패딩턴은 불쑥 사람 가족과 살게 된 귀여운 꼬마 곰 이야기다. 면면 사랑스러운 이 책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건 브라운 가족이 패딩턴을 대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패딩턴이 말썽을 피우거나 고집을 부려도 패딩턴을 타박하지 않는다. 대신 패딩턴이 마주친 새로운 가정과 도시, 그 안에서의 삶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도 패딩턴이 창피해하거나 상처받지 않을까 마음을 쓰는 자상한 사람들. 이들이 그리는 온화한 장면들을 하나씩 넘기다 보면 어느새 아이도 나도 따스한 찻잔을 쥐고 안락의자에 파묻힌 듯한 기분이 되곤 한다.

어린 시절 내가 아는 최고의 즐거움은 단연 책에서 얻는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책 속 인물과 나 사이의 막이 너무 얇아서였을까? 나는 콩쥐팥쥐나 헨젤과 그레텔을 웃으며 읽을 수 없는 아이였다. 아이들은 아이인 자체로 사랑받아 마땅한데, 동화 속 주인공들은 아이라는 이유로 미움받고 소외되기 일쑤였다. 그들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내 일인 듯 가슴이 쿵쿵거려 자꾸만 이불을 끌어안아야 했던 어린 밤들을 지금껏 기억한다.

하여, 나는 요즘 아이의 책 취향이 고맙다. 아이가 책을 통해 자신을 이입해온 대상들이 구박 아닌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이 고맙다. 아이는 아직 어리다. 그렇기에 생기는 틈을 이해해 주는 다정한 책들이 고맙다. 돌아보면 아이라서 사랑받을 때 나는 가장 행복했다. 아이니까 서툴고 미숙할 수 있음을 존중받는 것. 무엇을 잘해서, 어른들 보시기에 고운 짓을 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란 아이가 여기 있다는 이유만으로 귀하게 여겨질 때의 근사한 기분. 패딩턴을 읽을 때면 내가 나로서 사랑받던 날들의 달콤함이 솟아난다. 그러다 종내는 이 아이가 그저 내 곁 있다는 게 감사해 코끝이 찡 울리기도 하고.

어쩌면 패딩턴의 에피소드들이 사랑스러운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인 마이클 본드가 아들을 재우며 들려준 이야기들이 이 책의 바탕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므로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날, 너무 마음이 부치는 날, 나는 아이에게 평소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패딩턴을 읽어준다. 사랑받는 꼬마 곰이 되어 마음껏 장난을 치고 고집도 부려보는 단꿈을 꾸길 바라며.

 

■ 작가소개

- 스미레(이연진)
『내향 육아』 저자. 자연 육아, 책 육아하는 엄마이자 에세이스트.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짓는 엄마 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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