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홀로코스트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
[송석주의 영화롭게] 홀로코스트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2.07 0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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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르너바시 토트 감독, 영화 <살아남은 사람들> 스틸컷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버르너바시 토트 감독의 <살아남은 사람들>은 홀로코스트(Holocaust :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소녀 ‘클라라’(아비겔 소크)와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은 의사 ‘알도’(카롤리 하이덕)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홀로코스트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인 것이죠.

원래 홀로코스트는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학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고유명사로 쓸 때는 ‘독일군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한정하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는 참 많습니다. 알랭 레네 감독의 <밤과 안개>(1955)와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안네의 일기>(1959) 그리고 루이 말 감독의 <굿바이 칠드런>(1987) 등이 홀로코스트 영화를 말할 때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영화들이죠.

대중적인 영화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1994)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체코 출신의 독일계 사업가였던 ‘오스카 쉰들러’라는 실존 인물이 독일군으로부터 수많은 유대인을 구출한 실화 바탕의 작품입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웃음을 잃지 않고 죽음의 순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으로 유명한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1999)라는 영화도 있지요. 이 외에도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8), <사울의 아들>(2016) 등이 관객으로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기존의 홀로코스트 영화는 대개 독일군이 유대인들의 정신과 육체를 얼마나 잔혹하게 말살하는지에 포커스를 맞추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들이 기능적으로 소비되는 면이 있었지요. 특히 <쉰들러 리스트>에는 독일군 장교가 유대인을 마치 게임 놀이하듯이 총으로 사격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정의로운 메시지와는 별개로 사건의 참상을 고발하는 방식이 다소 단순하고 오락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책 『타인의 고통』의 저자 수전 손택의 논의처럼, 카메라가 발명된 1839년 이래로, 이미지는 ‘죽음을 길동무’로 삼아 왔습니다. 죽음뿐만 아니라 그 전후의 과정을 자극적으로 전시하는, 이른바 ‘재현의 윤리’가 전무한 이미지는 생생하게 숨 쉬는 인간을 그저 무용한 사물로 만들어 버리지요. 폭력의 참상을 고발한다는 미명 아래, 영화 속에서 자행되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감독으로서 매우 중요한 태도입니다.

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쉽게 빠지는 덫이 바로 이런 경우예요. 소위 “전쟁은 나쁜 것이고,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자못 엄중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들이 전쟁 상황이 주는 모종의 쾌감과 스펙터클의 이미지를 화려하게 전시하는 것은 일종의 자가당착(自家撞着)입니다. 정작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은 피해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고통당했는지 여부보다는 고통의 시간 이후, 그들이 견디고 버틴 삶입니다. 피해자들이 흘린 피(血)에만 방점을 찍고, 그 이후의 삶을 괄호 쳐버리는 영화는 관객의 허기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학살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의 연대와 우정 그리고 생존의 숨결이 고고하게 빛나는 영화입니다. 피 흘리는 장면 하나 없이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환기하고 있지요. 영화는 유혈이 낭자하는 자극적인 이미지 대신,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메마른 이미지들 속에서 삶의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보여주며, 결국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만이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치유의 손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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