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오늘, 우리2’가 전하는 가족의 모습
[송석주의 영화롭게] ‘오늘, 우리2’가 전하는 가족의 모습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1.30 0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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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늘, 우리2>는 네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사회가 정상으로 간주하는 울타리 바깥에 있어요. 그러니까 궤도(軌道)를 벗어난 존재들이죠. 궤도는 이미 누군가가 밟고 지나간 흔적이기 때문에 안전한 본보기가 될 수 있지만, 때로는 우리를 얽어매는 굴레이자 속박일 수도 있어요. 가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네 편의 영화들은 연대와 추억, 부재와 상실 등의 키워드를 통해 가족이라는 집단의 다양한 형태와 가능성을 탐문합니다. 이렇게 외치면서요. “궤도를 벗어나도 괜찮아요!”

은퇴한 아빠와 백수 아들, 양재준 감독 <낙과>

양재준 감독, 영화 <낙과> 스틸컷

<낙과>는 은퇴한 아빠 ‘종환’(기주봉)과 4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아들 ‘도진’(박세준)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종환과 도진이 처한 상황을 여러 형태의 낙과(落果)들로 재기 발랄하게 형상화합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살구,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 추적추적 내리는 비 등 영화에 등장하는 하강의 이미지들은 주류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버려진 부자의 존재와 연결됩니다. 은유와 상징이 뛰어난 영화이지요. 그 과정에서 카메라는 아빠와 아들의 끈끈한 우정과 연대의 순간을 말없이 포착합니다. 부자의 처지가 간혹 처량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외롭거나 쓸쓸해보이진 않아요. 아직까지 아빠 곁에는 아들이, 아들 곁에는 아빠가 있으니까요.

김장 날 모인 세 남매, 이나연 감독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이나연 감독, 영화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스틸컷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는 삼남매인 ‘지혜’(신지이) ‘지윤’(손정윤) ‘지훈’(함상훈)이 김장을 하기 위해 오랜만에 모여서 엄마와의 옛 추억을 떠올리는 영화입니다. 김장 후에 저녁 준비를 하는 데 (죽은 엄마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 한 상자가 도착하고, 이 순간부터 영화는 현실에서 환상으로 넘어갑니다. 마당에서 인기척이 들려 나가보니, 엄마가 아프리카 전통 복장을 입고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요! 삼남매는 엄마의 환영(幻影)을 환영(歡迎)하고, 번갈아가면서 즐겁게 춤을 춥니다. 이제 각자 독립해 삶의 단독자로 살아가려는 삼남매가 죽은 엄마와 정서적으로 독립하는 순간을 흥겹게 묘사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아빠와 아들 그리고 아빠의 애인, 이준섭 감독 <갓건담>

이준섭 감독, 영화 <갓건담> 스틸컷

<갓건담>은 이혼한 부모님의 재결합을 원하는 중학생 ‘준섭’(김현목)의 이야기입니다. 준섭은 엄마의 생일을 앞두고 강원도 홍천에 살고 있는 아빠에게 가요. 왜냐하면 엄마의 생일 파티에 아빠를 초대하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요. 아빠의 집에 갔더니 ‘옥슬’(차미정)이라는 누나, 아니 아빠의 애인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영화는 한나절 동안 함께한 세 인물의 동행을 다큐멘터리 기법 등을 가미해 코믹하게 묘사합니다. 옥슬은 서울로 돌아가는 준섭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고, 다음에 또 보자며 해맑게 인사해요. 준섭은 옥슬이 준 돈으로 그토록 갖고 싶었던 ‘건담’을 사게 되지요. 알쏭달쏭한 세상일을 흥미로운 캐릭터 설정으로 유쾌하게 그린 영화입니다.

시각장애인 엄마와 아들, 여장천 감독 <무중력>

여장천 감독, 영화 <무중력> 스틸컷

<무중력>은 시각장애인 엄마 ‘현희’(한태경)와 아들 ‘민수’(최윤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빈자리를 엄마와 아들이 어떻게 감각하는 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오프닝 시퀀스입니다. 검은 스크린 위에 천천히 하얀 점자가 새겨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눈으로 대상의 존재와 형태적 특징을 파악하는 인간의 시각을 전복하는 이미지입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보다’라는 행위의 근본적인 의미를 묻고 있지요. 이어 카메라는 집안의 정물들과 비어있는 공간을 포착함으로써 할머니의 빈자리를 물화(物化)합니다. 시각장애인을 다루는 감독의 따뜻하고 섬세한 연출 역시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나가며

주로 가족영화를 만들어 온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서 “가족은 둘도 없이 소중하지만 성가시다”며 “웃을 수 있는 영화를, 건조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논의처럼, 가족이니까 서로 이해할 수 있다거나 가족이니까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족이니까 모른다’가 우리 삶에 훨씬 더 가닿아 있는 말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2>가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결여와 부재 그리고 상실을 앓고 있는 네 가족의 일상을 흥미 본위의 구경거리로 만들거나 억지로 이해하려들지 않고, 건강하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묵묵히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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