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파힘’이 ‘빌리 엘리어트’가 될 수 없는 이유
[송석주의 영화롭게] ‘파힘’이 ‘빌리 엘리어트’가 될 수 없는 이유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1.01.24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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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프랑소와즈 마틴 라발 감독, 영화 <파힘> 스틸컷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방글라데시의 체스 신동 ‘파힘’(아사드 아메드)은 자국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피해 아버지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합니다. 파힘이 목숨을 걸고 프랑스에 온 이유는 세계 체스 챔피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예요. 혹시라도 대회에서 우승하게 된다면, 방글라데시에 두고 온 어머니와 동생을 다시 만나 프랑스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피에르 프랑수아 감독의 영화 <파힘>은 사랑하는 가족과의 안전한 합일을 위해 체스 챔피언이 되어야만 하는 소년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파힘>은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방글라데시 소년이 세계 체스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교훈적인 성장 서사의 틀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현실(이민자 문제)과 꿈(체스)이 양립하는 서사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2000)와 유사한 지점이 많습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대처 총리 시절 탄광 노동자들의 파업 상황을 배경으로, 발레를 사랑하는 소년 ‘빌리’(제이미 벨)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발레리노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성공담과 사회 문제가 병치하는 서사에서 중요한 것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입니다. <빌리 엘리어트>가 뻔한 성공담으로 전락하지 않은 이유는 탄광 노동자들의 실존적인 문제를 기능적으로 소비하거나 도구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빌리가 발레학교 최종 합격통지서를 받은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탄광 노동자들이 파업에 실패한 날이기도 합니다. 이어 빌리가 새로운 출발을 위해 런던으로 떠나는 날에 광부로 일하는 빌리의 아버지는 정부의 탄압에 굴종하고 다시 갱도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하지요.

체념한 표정을 짓고 갱도로 내려가는 아버지의 쇼트(하강 이미지)와 몇 년 후 발레리노가 된 빌리가 무대에서 높이 뛰어오르는 쇼트(상승 이미지)의 연쇄는 영화의 균형 감각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화는 이러한 쇼트의 연쇄를 통해 빌리의 찬란한 성공 이전에 고단한 현실의 문제가 있고, 아버지의 응원과 희생이 있었기에 빌리가 높이 뛰어오를 수 있었다는 걸 말해주고 있지요. 이처럼 <빌리 엘리어트>는 현실과 꿈이 충돌하고 대립하는 서사에서 무작정 어느 한쪽의 가치를 두둔하거나 편들지 않습니다.

반면에 <파힘>은 현실의 지난한 문제를 장르영화의 관습으로 봉합해버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이 영화가 방글라데시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과 이민자 문제의 심각성을 노골적인 코미디나 상투적인 멜로드라마로 눙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개인의 성공담과 현실의 비극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장르영화의 자장 안에 관습적으로 포획되면서 이야기 자체가 굉장히 납작해져 버립니다. 이로 인해 마지막에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힘이 빠지게 되는 것이죠.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폭력적 사태를 보여주는 기록 장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톤과 불화하는 이런 돌출된 쇼트는 현실의 문제를 영화로 가져올 때, 감독이 느끼는 최소한의 부채 의식을 해소하고자 하는 일종의 면피용 이미지처럼 느껴집니다. 사건의 비극성을 그저 손쉽게 보여주는 것과 그것을 이야기에 치밀하게 녹이고, 쇼트의 인과적인 논리로 풀어내는 건 다른 문제예요. 감독의 참다운 인식과는 별개로, 현실의 문제들이 영화에서 상당히 표피적이고 단선적인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 영화 <빌리 엘리어트> 스틸컷

영화가 파힘의 성공담을 보여주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체스에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는 파힘은 ‘타고난 재능’으로 ‘예정된 대회’에서 승리하는 밋밋한 이야기 구조에 갇혀 있어요. 즉 스포츠나 예술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수련 과정’을 이 영화가 굉장히 헐겁게 묘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수없는 좌절과 실수 끝에, 피루엣(발레 회전 동작)을 처음으로 성공한 후 빌리가 지어 보였던 웃음이 <파힘>에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체스라는 스포츠를 매력적으로 묘사할 뿐, 그것에 대한 존중이 부재한 거지요.

<파힘>은 현실과 꿈을 치열하게 파고들지 않고, 그저 관망하며 가볍게 스케치하는 데 머무릅니다. 감독이 실화와 동화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다가 어느 쪽에도 가닿지 못하고 그만 끈을 놓아버린 것 같아요. 분명히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데, 여전히 표류하는 현실과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성공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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