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볼 만한 콘텐츠] 김영하 소설가 “내 소설 중 한권만 읽으라면 이 책”
[주말 볼 만한 콘텐츠] 김영하 소설가 “내 소설 중 한권만 읽으라면 이 책”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1.01.09 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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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 [사진=밀리의 서재]
김영하 작가. [사진=밀리의 서재]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작가란 말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김영하 소설가는 글 짓는 사람의 정체성을 ‘말 수집가’로 규정한다. 모름지기 소설가란 적확(정확하게 맞아 조금도 틀림이 없다)한 말에 관념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언뜻 프랑스의 문호 구스타프 플로베르가 주창한 ‘일물일어’(一物一語: 모든 현상은 그에 딱 맞는 표현이 따로 있음)설을 떠올리게 하는데, 실제로 김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시절 학생들에게 “짜증난다”는 표현을 금지한 바 있다. 완전히 다른 감정(서운하다/당황스럽다/황당하다 등)의 무늬를 단순하게 뭉뚱그리는 적확하지 않은 표현이라는 것이 이유. 그는 “소설가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언어를 부여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된다.)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철학처럼 그의 소설은 적확한 단어에 스민 세밀한 감정묘사가 일품인데, 그런 감성을 흠뻑 머금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빛의 제국』(2006)은 제22회 만해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잊힌(줄로 알았던) 남파 간첩이 갑작스레 귀환 명령을 받고 벌이는 하루 동안의 사건·사고를 그려낸다. 주인공은 평양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재학중에 선발돼 4년간 대남공작원 교육을 받고 1984년 서울로 남파된 22살의 김기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중 직속상관의 숙청 후 연락이 끊겼던 북의 귀환 명령에 고민한다. ‘돌아가? 해외로 도주할까? 혼자? 가족은 어떻게 하고?’ 이런 고민 속에서 소설은 대개의 가정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을 함축적으로 배설한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남한에서 다닌) 연세대학교 동창과 결혼해 비밀을 간직하고 사는 기영, 그런 남편을 오해하고 성적 일탈을 감행하는 미라. 이후 기영은 아내에게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고 의견을 구하지만, 아내는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비밀, 사랑, 외도, 현실, 신념이란 재료를 맛있게 버무린 작품.

『검은 꽃』(2003)은 김 작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제35회 동인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지난 17년간 50쇄 가까이 증쇄를 거듭해왔는데, 지난해 복복서가 출판사에서 문장을 면밀히 다듬고 주요 장면을 수정해 개정판을 출간했다. 소설은 대한제국민의 멕시코 이주사를 그린다. 대한제국이 “물에 떨어진 잉크방울처럼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던 1905년 ‘멕시코 드림’을 꿈꾸며 떠난 이들이 이국땅에서 겪는 고난의 역사를 되살린다. 우연히 접한 어느 이민사 연구자의 잡담에 귀 기울인 김 작가는 수많은 연구 서적을 토대로 직접 멕시코와 과테말라로 현지답사를 떠난 후 소설을 집필했다. 제목 ‘검은꽃’은 여러 색이 뒤섞여 검은색이 되듯, 남녀노소, 계층, 문화, 인종의 뒤섞임을 의미한다. 김 작가는 이 소설에 관해 “내가 쓴 다른 소설들과 결이 크게 다르고 매우 이질적”이라면서도 “만약 내 소설 중 단 한권만 읽어야 한다면 바로 이 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직 두 사람』(2017)은 김 작가가 칠 년 동안 쓴 일곱 편의 중단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다섯편의 단편집 중 최신작. (수록 순서가 아닌) 발표순서로 보자면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신의 장난」 「오직 두 사람」인데,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기점(「아이를 찾습니다」)으로 글이 나뉜다. 그 이전에 발표한 소설이 무언가를 잃은 인물들이 불안을 감추기 위해 자기만의 합리화로 위안을 얻는다면, 이후 소설은 인생에는 완벽히 회복될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내비친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이를 찾습니다」이다. 소설 속 부부는 아이를 잃어버리고 지옥 같은 삶을 살던 중 마침내 아이를 되찾지만, 기대했던 천국은 찾아오지 않는다. 단절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다시 이어 붙는데 마찰이 심해 끝내 그들은 이전보다 더한 지옥과 마주하게 된다. 회복 불가능한 고통 속에 놓인 그들의 처지는 완벽한 해결 없이 견뎌내야 할 삶의 문제가 있다는 엄혹한 현실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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