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 역사 왜곡 논란... “재밌으면 된 거 아닌가요?”
설민석 역사 왜곡 논란... “재밌으면 된 거 아닌가요?”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2.29 08:27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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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민석 유튜브]
[사진=설민석 유튜브]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1871년 발생한 ‘신미양요’(1866년 조선 관군이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웠다는 이유로 미군이 강화도를 침공함)를 통해 조선 땅에 미군이 상륙했다. 당시 상황은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담겼는데, 당시 쫓기는 노비 신세였던 유진 초이(이병헌)는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美 군함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미군 신분으로 다시 조선 땅을 밟고, 이후 일제 치하에서 ‘연발총’을 사용하는 의병 고애신(김태리)을 만나 뜻을 같이한다. 드라마는 의병의 구국(救國) 활약상을 흡입력 있게 그려낸 탓에 큰 인기를 누렸고, 다수의 시청자는 드라마의 배경 설정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한창이던 당시 조선 땅에 미국인 선교사가 있었다는 설정과 의병(고애신)이 (당시 일본군에게만 있었다고 알려진) 연발총을 사용하는 모습은 역사적 사실과 달라 고증 오류라는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허구를 폭넓게 허용하는 드라마란 구실로, 또 내용이 재밌다는 이유로 고증 오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최근 비슷한 사례로 역사 강사 설민석이 도마에 올랐다. 발단은 tvN 예능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전한 강의 내용이 왜곡됐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나오면서부터. 지난 20일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은 해당 프로그램에 관해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게 너무 많아 하나하나 언급하기 힘들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한양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와 더럼대에서 이집트학을 전공한 곽 소장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BC 285~246년경에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세웠다는 게 정설)을 (BC 356~323년에 살았던) 알렉산드로스가 세웠다는 말이나 프톨레마이오스-클레오파트라 같은 ‘이름’이 무슨 성이나 칭호라며 (고조선 시대 왕을 일컫던) ‘단군’ 칭호와 비교한다든가 하는 것들은 정말 황당한 수준”이라며 “‘왔노라 봤노라 이겼노라’(카이사르가 젤라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폰토스 왕국군을 제압한 뒤 로마로 귀국해서 한 말)를 이집트에서 로마로 돌아가 말했다고 한 것 정도는 그냥 애교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음악사 왜곡 논란도 터져 나왔다. 지난 15일 설민석은 자신의 유튜브에 올린 ‘노동요에 선덕여왕이 왜 나와’란 영상을 통해 백인 가수인 프랭크 시내트라가 재즈 음악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재즈가 백인 음악이 됐고, 이에 흑인이 “회귀, 복고, 다시 블루스로 돌아가자. (그래서 만들어진 게) 리듬앤블루스(R&B)”라고 설명했다. 이에 재즈 전문지의 어느 기자는 댓글을 통해 “R&B는 블루스가 미국 남부의 흑인 술집을 넘어 미국 전역의 더 많은 이에게 전해지는 과정에서 탄생한 장르”라고 밝혔다. 배순탁 대중음악평론가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R&B는 간단하게 미국 남부의 (델타) 블루스가 일리노이 중앙선 철도 기차를 타고 북부 대도시(정확하게는 시카고)로 진출한 뒤 일렉트릭화 된 장르”라며 “재즈가 회귀해 돌아간 게 R&B라는 건 완전한 헛소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나는 설민석이 자기 분야 강의에 관해서는 무척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왜 자꾸 설익은 걸 넘어 ‘무지’에 가까운 영역에까지 손대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후 설민석은 R&B 논란에 관해선 별다른 해명 없이 영상을 삭제했으나. 이집트 역사 왜곡에 관해선 지난 22일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앞으로 더 성실하고 더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다”며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어렵고 난해한 내용을 쉽게 전달해 대중 이해도를 높이는 건 설민석의 강점이고 그의 인기 요인이기도 하다. 다만 우려되는 건 흥미 유발을 위해 첨가한 개인적 견해나 추정을 대중이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 그런 단정적 주장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는데, 실제로 설민석은 2014년도부터 다수의 강연과 책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인 태화관이 있었다. 민족 대표(33인)들이 그곳에 모여 술을 마시곤 했다”며 “민족 대표 33인 중 대부분이 1920년대에 친일파로 돌아섰다”고 주장해 소송을 당한 바 있다.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후손들은 “독립선언을 룸살롱 술판으로 변질시키고 손병희의 셋째 부인인 주옥경을 술집 마담으로 폄훼했다”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설민석의 발언은 역사 비평을 허용하는 범위 안에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대다수가 친일로 돌아섰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으로 판단, 1,4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잦은 논란에도 온라인에선 설민석을 두둔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 “설민석만큼 역사를 재밌게 소개하는 사람이 없다” “설민석 덕분에 내 아들이 (역사)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강연으로 대중이 역사에 관심 두게 하는 데 끼친 공헌이 크다” 등의 반응이 다수다. 비판 여론도 없지 않지만, 우세한 긍정 여론의 주된 이유는 ‘재미’였는데, 전문가들은 그런 현상에 우려를 표한다. 재미를 최우선 가치로 삼으면 그 과정에서 진실과 사실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

책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에서 인문학자 최형국은 “오늘날 역사는 각종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재탄생한다. 역사는 그저 지나간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콘텐츠로서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다”며 “(그 안에는)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관련 사료가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많다. 하지만 시청자는 모든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런 이유에서) 한 번 왜곡된 역사 인식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그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논객 진중권은 책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에서 “디지털 시대의 대중은 진위(眞僞)가 아니라 호오(好惡)의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그들은 ‘지루한 사실’보다는 ‘신나는 거짓’을 선호한다”고 현 사회를 분석했다.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는 “현대의 대중은 사실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루한 일상에 충분히 지쳐 있다. 그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멋진 환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대중이 역사 강연에서 바라는 것이 혹 ‘진실’보다 ‘재미’는 아닌지, 설민석은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진실 탐구보다 중시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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