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짐 로저스 “곧 엄청난 금융위기 닥친다”
[니가 사는 그책] 짐 로저스 “곧 엄청난 금융위기 닥친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2.23 13: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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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뛰어넘는 금융위기가 닥칠 겁니다.”
세계 3대 투자자로 꼽히는 짐 로저스는 지난해 이렇게 경고했다. 미국 나스닥 주가지수가 최고치를 경신했고, 온 세상이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으로 가득했을 때였다. 그래서 당시 로저스의 이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금융위기가 정말로 터질지 확인하기도 전에 올해 초 코로나19가 창궐해 코스피가 폭락했다. 그러나 바이러스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몇 달 뒤 금세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연일 신고가(新高價)를 경신했다. 신고가를 경신하면 통상 그 영향이 적어도 1년 넘게 이어진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들려온다. 

그러나 로저스는 지난 4월 미국에서 발행한 책 『돈의 미래』에서 여전히 지난해 자신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앞으로 몇 년은 나의 투자 인생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최악의 경기 침체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도 ‘심판의 날’이 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경고의 핵심은 ‘부채’다. 로저스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기 전에도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다가올 재앙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주요 국가 증시는 전망치를 웃돌며 상승을 이어갔다”며 “문제는 당시 각국이 거액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부, 금융기관, 민간 기업, 개인을 포함한 모든 부문에서 무서운 속도로 부채가 불어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흉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지만, ‘부채’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주택을 담보로 제한 없이 대출을 해줬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연방저당권협회와 미국 주택담보대출공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채권을 사서 증권화한 다음 금융기관에 대대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6년 미국 주택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담보 가치가 떨어져 융자를 갚지 못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빚을 져가면서까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인 금융기관들의 부채도 급증했다. 2007년 6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입은 ‘베어 스턴스’(당시 세계 5위 투자은행)가 파산 직전에 이르러 JP모건에 인수된 것은 금융위기의 전조였다. 이후 2008년 당시 세계 4대 투자은행으로 꼽히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리먼 브라더스와 거미줄처럼 얽혀있던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 여파는 각국이 그간 쌓아놓은 부채로 인해 더욱 커졌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전에 이미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주택 시장 거품이 붕괴했었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빚이 급증하고 있었다.

로저스는 결국 부채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한다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부채가 많은 상태에서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일이 터지면 곧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까지 세계 경제가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다고 설명한다. 

가령 유럽에서 재정 상태가 가장 건전하다고 평가받는 독일 최대 민간은행 도이츠 은행에 빨간불이 켜졌었다. 로저스는 “확장 전략이 실패하며 적자가 이어졌고 2017년에는 도이치 은행에 투자하던 중국항공집단(China national Aviation Holding Company)의 경영이 악화되면서 은행 재건이 수포로 돌아갔다. 도이치 은행의 금융 파생 상품 규모가 약 71억 달러에 달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파산할 경우 그 충격은 정말로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트비아에서는 은행이 줄줄이 파산했다. 2018년 이 나라의 3대 은행이던 ABLV 은행이 파산한 데 이어, 지난해 8월에는 ‘PNB 방카’(PNB Banka)도 파산했다. 같은 시기 아르헨티나는 과도하게 불어난 빚 때문에 일시적으로 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이면서 통화인 페소와 국채 가격이 급락했다.    

로저스는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난 뒤 12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주가가 상승했다. 역사적으로도 10년 넘게 주가가 꾸준히 상승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그런데 증시가 활황을 보이는 동시에 국가 부채도 늘어났다. 빚이 지나치게 많으면 언제나 그렇듯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레바논이 자국 역사상 처음으로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브라질, 터키, 남아프리카도 위기에 처했다”며 “이런 맥락에서 나는 세계 경제에 본격적인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고 판단한다. 과거에도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로저스는 이 외에도 세계 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는 미국이 사실 세계 최대 채무국이며 많은 지자체가 재정이 고갈돼 파산 직전에 처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과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인도 역시 채무가 너무 많다고 설명하며 이러한 상황이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금융위기가 일어날 것인지, 일어난다면 언제 일어날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로저스가 미국에서 이 책을 낸 것이 지난 4월이고, 이후 근 8개월 동안 주식시장은 오히려 그의 예상과 반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로저스의 말은 결코 쉬이 들리지 않는다. 투자가로서 그는 1971년 닉슨 쇼크, 1987년 블랙 먼데이,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 큼직한 금융위기를 여럿 경험했고, 경기 침체의 한가운데에서도 투자를 통해 큰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블랙 먼데이와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예견해 명성을 얻기도 했다. 

‘동학개미, 서학개미, 영끌투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작금의 한국은 투자왕국이다. 투자에 있어서 늘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한해를 마무리하기 전 로저스의 경고에 한번쯤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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