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잠재적 배신자?... “성관계 녹음은 만일을 위한 것”
애인은 잠재적 배신자?... “성관계 녹음은 만일을 위한 것”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1.30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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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사랑하는 두 사람이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이때 둘 중 한명이 정사 장면을 촬영하자고 제안한다. 다른 한명은 머뭇거리지만, ‘우리의 사랑을 기념하자’ ‘카메라로 찍으면 성적 흥분감이 더할 것’이란 상대의 설득에 끝내 촬영을 허락한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던 어느 날,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누군가가 이별을 청한다. 이별을 당한 쪽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앙갚음하기 위해 과거에 찍었던 영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다가 끝내 온라인에 퍼뜨린다.

위 상황의 경우 동영상을 유포한 피의자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처벌법’에 따르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유포된 자료가 영상이 아니라 녹음파일이라면 같은 성폭력 범죄로 처벌받을까? 답은 ‘아니오’다. 현행법은 성관계 음성 녹음을 성범죄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성폭력 범죄 처벌법이 아닌 (상대적으로 형량이 낮은) 명예훼손에 의한 처벌만 가능하다.

이에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성관계를 음성 녹음하는 행위도 영상이나 사진을 촬영하는 것과 같은 성범죄로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녹음기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음성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녹음하거나 유포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유포했을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도 가능하다.

개정안에 여성들은 환영하는 모습이다. 개정안이 게시된 국회 입법예고 게시판엔 “몰래 녹음하는 게 지금껏 성범죄가 아니었다는 게 놀랍다” “성관계를 녹음할 수 있게 내버려 두면 이로 인한 성범죄 피해자가 생길 것이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여성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법안(이 나와 다행)”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반면 다수 남성은 개정안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입법예고 게시판엔 “만약 누군가 성관계 후 악의를 가지고 일관된 진술로 성범죄를 당했다고 고소를 한다면 이를 막을 현실적인 방법이 있나”라며 “현실적 대안 없이 무고한 사람이 생길 수 있는 법안이 발의돼선 안 된다”는 내용의 댓글이 다수 달렸다. 유포하지 않더라도 녹음 행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녹음도 처벌받기 때문인데, 일각에선 “그래도 강간범(징역 3년 이상)되는 것보다 불법 녹취(최대 징역 3년)가 낫다. 녹취는 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성관계 영상 공개든, 강간을 당했다는 무고든 상대를 향한 공격(돈을 뜯어내기 위한 접근은 제외) 혹은 복수를 안 하면 될 일인데, 왜 누군가는 이런 위험한 방식의 복수를 감행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매튜 홀은 책 『리벤지 포르노』를 통해 “몇몇 학자들은 복수가 두 가지 목적을 이룬다고 주장한다”며 복수는 ‘트라우마와 상실에 대한 반응이자 통제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환상’이자 ‘상처 입거나 모욕당하는 행위를 동반하는 자기 파괴적 충동으로부터 피해자(자신)를 보호하는 안전밸브’라고 설명한다. “(자칭 피해자의 복수는) 피해를 표면화시켜 상처 입고 손상된 내면의 자존심과 정의가 복구되는 느낌을 받도록 도움을 준다는 의미”라는 것.

하지만 이런 자의적인 복수는 상대는 물론 자기 자신조차 파멸의 길로 인도할지 모른다. 당국의 처벌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기 때문. 매튜 홀은 “(과거 성)범죄의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수많은 프로그램은 (피해자 구제보다는) 재발의 위험을 줄이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지원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의 조항 내에서 (피해자의 모습이 담긴) 이미지를 삭제하고 가해자를 재판으로 끌어내는 법적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삭제지원인력은 기존 여섯명에서 열여섯명으로 증원됐고, 상대 의사에 반해 성관계 영상을 유포했을 경우에는 벌금형 없이 실형을 선고하도록 법률 개정이 이뤄지고 있다.

불법 영상 촬영물은 한때 ‘리벤지 포르노’라는 용어로 널리 불렸으나, 그 이름에 피해자가 ‘복수’(리벤지) 당할만한 일을 했다는 가정, (한때) 사랑했던 이와의 애정행각을 포르노로 간주하는 문제가 있어 이제는 지양되는 표현이다. 그런 표현이 지양될 정도면, 그런 행위(복수, 불법 영상 유포)를 금하는 건 당연지사다. 다만 무고 방어권에 관해선 상대의 고소에 대비해 애정행각 녹음이 필요하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을 마냥 무시하기 어려운 현실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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