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편지] 책값이 비싸다는 당신에게
[독서편지] 책값이 비싸다는 당신에게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0.16 13:07
  •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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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며칠 전 당신은 저에게 한 댓글을 보여줬습니다. 도서정가제 관련 기사에 달린 “솔직히 책값 너무 비싸다. 조금만 낮춰도 책 많이 살 텐데”라는 댓글. 많은 사람이 당신이 쓴 그 댓글에 공감했고, 당신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채 별다방에 가서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주문했습니다. 

저는 그날 카페에서 나와 종각 영풍문고에서 3,500원짜리 소설집 『소설 보다: 가을 2020』을 샀습니다. 그러면서 커피 값이 너무 비싼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교보문고에 들러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7,500원에 샀는데, 별다방의 웬만한 메뉴 가격이 그 정도 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당신은 요즘 책값이 2~3만원 정도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두명 중 한명이 1년에 종이책을 한권도 읽지 않으니(2019 국민 독서실태 조사), 그럴 수도 있겠지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정치인이 버스비를 모르듯 말입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도한 책값 할인을 막는 현행 도서정가제가 내달 20일 일몰을 앞뒀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에는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을 넘겼고, 도서정가제 유지를 주장하는 출판관계자들의 절박한 시위를 보니 현행 도서정가제가 바람 앞의 등불 같았습니다. 다행히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도서정가제는 유지가 기본”이라고 밝혀서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조금 안심이 되지만, 그럼에도 현행 도서정가제가 완화되거나 폐지되는 상황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제가 다니는 동네책방들입니다. 도서정가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면 중소형서점들에서는 책을 거의 팔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중소형서점들은 현행 도서정가제의 15% 할인(가격 할인 10% 이내, 마일리지 제공 등 간접할인은 5% 이내)조차 하지 못해왔습니다. 반대로 대형서점들은 15% 할인도 모자라 카드사와 제휴해 일부 소비자에게 추가로 15% 할인을 더 해줬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대부분 중소형서점에서는 책을 구경만 하고 대형서점에서 할인을 받고 구매했지요. 

‘그러면 중소형서점들도 더 할인해서 팔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중소형서점들에 손해 보고 장사를 하라는 말과, 혹은 사업을 접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애초에 대형서점과 중소형서점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합니다. 출판사와 유통사가 대형서점에 책을 더 싸게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책이 주로 대형서점에서 팔리기 때문에 이들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만원짜리 책이라면 대형서점에는 6,000원에 공급하고 중소형서점에는 7,000원에 공급합니다. 그러니까 대형서점 공급률(서점에서 책 한권이 팔리면 출판사가 받는 돈의 비율)은 60%, 중소형서점 공급률은 70%인 셈입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대형서점은 중소형서점보다 10%를 더 할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라는 말은 저에게 슬프게만 들립니다. 그 말은 문화의 다양성을 포기하라는 말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대형서점에 들를 때마다 기시감이 듭니다. 교보문고든, 영풍문고든 보이는 책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은 출판사의 책들은 어딜 가든 돋보입니다. 광고비를 기준으로 책이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베스트셀러 목록도 어느 대형서점이나 천편일률적입니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은 물론 좋은 책이지만, 홍보를 열심히 한 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반면, 중소형서점들에서는 그런 기시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조금 다른 베스트셀러 목록과, 조금 다른 책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서점에서는 간혹 독립출판물도 찾을 수 있습니다. 1년에 8만여 종의 신간이 출간되는데 이 중 우리가 대형서점에서 볼 수 있는 책은 극히 일부라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서점만이 아닙니다. 도서정가제를 완화 및 폐지하면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출판사들은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출판사 개수가 줄어드는 것은 곧 문화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도서정가제는 중소출판사를 보호해왔습니다. 가령 현행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출판사 수는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전국 출판사의 53.8%가 도서정가제가 출판사 창업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하기도 했습니다(한국출판인회의 2020년 8월 설문조사). 가격으로 경쟁할 수 없게 되면 출판사들은 아이디어나 콘텐츠의 질 향상에 매달리니 도서정가제는 문화의 다양성 향상만이 아니라 질적 향상에도 기여하는 셈입니다. 

작가들 역시 도서정가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가격 할인을 하지 않으면 책은 잘 팔리지 않을 것이고, 할인하면 그만큼 인세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만원짜리 책 한 권을 팔면 작가에게는 고작 천원 정도 돌아가고, 책 판매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작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수익이 더 줄어든다는 말입니다. 이에 더해 가격 경쟁으로 출판사 수가 줄어 책을 낼 기회조차 적어진다면 책을 쓰려는 작가들도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문체부가 운영한 민관 협의체에서 1년간의 논의를 거쳐 어렵게 합의한 도서정가제 ‘현행 유지’ 결정에 대해 지난 7월 문체부가 돌연 ‘재검토’ 의사를 밝히자 한국작가회의가 강경한 어조의 반대 성명을 발표한 이유입니다. 성명에서 작가들은 “도서정가제는 시장경제 논리로부터 출판계 전체의 다양성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돼 왔다”며 “도서정가제는 서점과 출판계에 만연했던 가격 경쟁을 완화하는 데 일조했으며,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개성 있는 출판사와 독립서점 등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당신은 미국과 영국 등 영어권에는 도서정가제가 없다는 사실을 언급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어권 국가에서 도서정가제가 없는 이유는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며, 따라서 출판시장이 국내외에 걸쳐 굉장히 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OECD 36개국 중 우리나라를 포함한 비영어권 출판 선진국 15개국은 모두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역시 문화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솔직히 책값 너무 비싸다. 조금만 낮춰도 책 많이 살 텐데.” 당신이 책보다 비싼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제게 보여준 댓글은 그래서 그 무게가 가볍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곧 중소형책방과 중소출판사, 작가를 거리로 내몰고 우리나라 문화 다양성을 축소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 책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비싸지도 않고, 오히려 도서정가제가 없는 나라에서 책이 더 비싼 편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을 되새기며 이만 마칩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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