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속 부모 직업란... 이 땅의 장그래·이지안은 어이할꼬?
자소서 속 부모 직업란... 이 땅의 장그래·이지안은 어이할꼬?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0.1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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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아버지는 뭐하셔?) 그런 걸 왜 물어봐요? 잘 사는 집구석인지 못 사는 집구석인지 아버지 직업으로 간 보려고요? 실례에요. 그런 질문.”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일찍 부모를 잃고 홀로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이지안(가수 아이유)은 직장 상사의 질문에 날카롭게 대꾸한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먼저 아버지의 부재란 상처를 내비쳐야 하고, 혹여 뒤따를지 모를 동정 혹은 편견 등의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없는 와중에 ‘부모 없는 자식’이란 편견과도 맞서야 하는 지안에게 부모의 부재는 단순한 결핍 이상의 마이너스다.

성숙한 사회에서의 개인 성취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것이지만, 현실 사회에서의 개인 성취는 부모 영향력을 가득 내포한 경우가 많다. 설령 직간접적으로 손을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사회적 입지는 자식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인데, 그런 정황이 여러 대학에서 발견됐다. 본래 대입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선 오롯이 개인 역량만 평가하기 위해 자기소개서에 부모 직업 기재를 금지하지만, 최근 교육부가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못한 사례가 다수 적발된 것. 일례로 성균관대는 2019학년도 학종 서류검증 과정에서 교사 추천서에 기재가 금지된 ‘부모 등 친인척 직업’을 적은 지원자 82명을 부적격 처리해야 하지만 그중 37명을 ‘문제없음’으로 평가해 중징계를 받았다.

응시자 부모가 시험 관계자로 참여한 경우도 있었다. 2016학년도 성균관대 논술전형에선 논술 응시자 부모(교직원 4명)가 시험감독에 위촉됐고, 같은 해 서강대 논술전형에선 특정 교수가 시험에 응시한 자녀의 채점위원으로 참여한 사실이 적발됐다. 비록 해당 응시자 중 합격자는 없었지만, 공정하지 못한 처사란 이유에서 경고 조처가 내려졌다.

이렇듯 부모 인맥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모습은 군대에서도 드러난다. 일부 훈련소의 경우 훈련병을 대상으로 일가친척 중 사회고위층 인사나 군 간부가 있는지 드러내놓고 조사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를 훈련병에게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그런 인맥이 해당 훈련병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들은 대개 부대 내 부조리한 현실에 피해 보지 않도록 특별 보호(?)를 받거나, 상대적으로 편한 보직을 배정받는 특별 대우를 누린다.

철학자 애덤 스위프트가 “어떤 부모를 갖게 될지는 전적으로 운이지만 어떤 자녀를 갖게 될지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듯, 자녀 입장에서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는 순전히 운의 문제다. 물론 일부 양심적인 부모가 자녀에게 직접적인 특혜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 공평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능력 있는 부모 슬하의 아이들은)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부모 모두 교육 수준이 높으며, 좋은 동네에 살고, 인근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다니면서) 다양한 재주와 능력을 계발하며 좋은 학위와 자격증을 따는 (등) 계급은 돈으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학력, 태도, 거주지 등으로도 규정(되기 때문)”(책 『20 vs 80의 사회』 中)이다.

2014년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 중 아버지의 학력이 고졸 이하인 사람은 73.1%, 가구소득이 500만원이 넘는 비율은 4.8%에 그쳤다. 반면 특목고의 경우 (가구소득 500만원 이상 가구가) 50.4%에 달했다. 소득 1분위(하위 20%)의 4년제 대학진학률은 39.8%였지만 5분위(상위 20%)는 75.2%였고, 상위 30개 대학진학률은 1분위가 4.3%, 5분위가 19%를 기록했다. 이를 두고 사회비평가 박가분은 책 『공정하지 않다』에서 “내가 어떤 대학을 가는지도, 나의 공부 시간과 노력 정도가 아니라 부모의 재력이 결정하는 사회가 됐다”며 “‘돈도 실력인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철학자 존 롤스는 “자신의 ‘자녀’가 사회에서 어느 자리에 있게 될지, ‘자녀’의 계급적 지위나 사회적 지위가 무엇이 될지, 또 ‘자녀’가 자연적으로 갖게 될 능력, 지능, 강점 등이 어느 정도일지 알지 못하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고 말했다. 부모의 사회적 입지가 자식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은 부모가 없고, 만화 『미생』의 장그래는 아버지가 없는 고졸 청년이었다. ‘부모 찬스’ ‘선배 찬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두 사람에게 사회는 보호장구 없이 내던져진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방탄조끼 입은 적과 맨몸으로 맞서 살아남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이들에게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하는 게 사리에 맞는 일일까? 물론 주위 도움을 끌어내는 능력이 실력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다만 그 도움을 값없이 얻은 것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회사에서 밀려난 장그래와 이지안이 주변 도움으로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 도움이 험난한 여정을 극복해나가며 스스로 개척한 결과물이었던 것처럼... 만인에게 주어진 조건이 같다는 건 다소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진보하려면 그 간극에 따른 험난함의 정도가 극복 가능한 수준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견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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