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말에 담긴 의미
[니가 사는 그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말에 담긴 의미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0.14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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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인기다. 드라마의 인기에 1961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혹자는 드라마와 소설이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고 말하지만, 소설과 드라마는 모두 브람스의 러브스토리를 모티브로 한다. 

독일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는 존경하는 스승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열렬히 사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자신을 음악가로서 성공할 수 있게 지원해준 스승의 아내를 넘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더욱이 브람스와 클라라 사이에는 14살이라는 나이차도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사용해 당신을 불러보고 싶습니다.” (브람스의 편지 中)
말년에 매독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앓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슈만.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사랑을 고백해보지만, 클라라는 완곡하게 거절한다. 평생을 슈만의 아내로 살기를 택한 것이다. 이후 클라라가 죽자 브람스는 그 충격으로 1년 뒤 생을 마감한다. 

세인(世人)의 가슴을 울린 브람스의 러브스토리는 여러 이야기의 모티브가 됐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이 러브스토리의 플롯을 차용했다고 할 수 있다. 소설과 드라마 모두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브람스’는 스물다섯의 잘생긴 변호사 시몽이다. 그는 그보다 14살 많은 폴에게 첫눈에 반해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퍼붓는다. 하지만 폴에게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 로제가 있다.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시몽과 달리 로제는 무심하기 짝이 없고 몰래 바람을 피우는 등 폴에게 불행을 안겨준다. 그래서 폴은 잠시 시몽의 품에 안기지만, 소설의 끝에서 결국 로제와 재결합한다. 시몽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을 이룰 수 없음에 절망한다.    

소설에서 시몽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쪽지로 폴을 브람스 연주회에 초대하고, 폴은 오랫동안 그 연주회에 갈지 고민한다. 그러니까 여기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말은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돌려서 말한 것과 같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는 ‘브람스’가 여러 명 등장한다. 주인공 송아는 동윤을 좋아하지만, 그 사랑을 고백할 수는 없다. 동윤이 그의 절친한 친구 민성의 전 남자친구이며, 민성이 여전히 동윤을 좋아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주인공 준영은 정경을 사랑하지만 역시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현호가 오랫동안 짝사랑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준영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 송아는 이렇게 묻고, 준영은 이렇게 답한다. “아니요. 안 좋아합니다. 브람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슬퍼서였을까. 송아는 준영이 유명 피아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브람스를 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슈만의 ‘어린이 정경’도 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준영은 브람스가 아닌 슈만이 되고자 했으나 끝내 그러지 못한 것이다.

한편, 2014년 브람스의 러브스토리를 거의 완벽히 차용한 작품도 있었다. 김희애, 유아인 주연의 드라마 ‘밀회’다. 이 드라마에서 선재는 자신을 음악가로서 성공하게 해준 스승 준형의 아내 혜원을 사랑한다. 혜원은 선재보다 19살이나 많다. 그러나 브람스와 달리 선재는 드라마의 끝에서 혜원과의 사랑을 이뤄낸다. 드라마에서 혜원이 선재에게 “책 좀 읽고 그래라” 하고 핀잔을 주자 다음날 선재가 읽고 온 책이 바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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