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랑은 영원하지 않아요, 속박에서 벗어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리뷰] “사랑은 영원하지 않아요, 속박에서 벗어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10.12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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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실내장식가인 서른아홉의 폴은 오랫동안 함께 지내 온 연인 로제에게 완전히 익숙해져 앞으로는 다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로제에게 폴은 만나고 싶을 때만 만나는 사람이며, 그가 습관적으로 다른 젊은 여자들과 하루 밤을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폴은 로제에게 매달린다. 

홀로 있는 외로운 밤이 늘어나고, 로제와의 관계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던 어느 날 폴 앞에 젊고 잘생긴 변호사 시몽이 나타난다. 폴에게 첫눈에 반한 시몽은 끊기 있게 열렬한 사랑을 고백하며 폴의 마음을 흔든다. 거짓말까지 해가며 다른 여자를 만나고, 폴과 만나면 늘 일과 관련한 불평만 늘어놓는 로제와 달리 시몽은 폴만을 바라본다. 시몽은 폴을 외롭게 하지 않고, 폴에게 여왕 대접을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일에 집착하는 로제와 달리 시몽은 집안이 부유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폴은 시몽을 밀어낸다. 일단,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둘의 나이차는 독일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와 그가 짝사랑한 스승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 클라라와 마찬가지로 14살이다. 소설이 출간된 1961년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인에 대한 시선이 오늘날보다 더 좋지 않았다. 특히 여자가 남자보다 나이가 많을 때는 더욱 그랬다. 당시 사회에는 그러한 성차별이 만연했다. 

무엇보다 폴에게 있어 로제와의 삶은 관성 같은 것이었다. 그 관성은 족쇄가 풀려도 주인집을 떠나지 못하는 노예의 것과 같았다. 폴은 로제와 있을 때 늘 끌려다니는 입장이었다. 심지어 로제는 폴에게 종종 겁을 줬다. 로제와 있을 때 폴은 그저 로제의 말에 따르면 될 뿐이었다. 그러한 관계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자유를 개입시킬 여지가 없었다. 반면, 시몽과 있을 때는 그 반대였다. 시몽은 폴의 보조자 역할을 자처했다. 시몽은 폴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세심하게 물었고, 가만히 폴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몽과 함께라면 폴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폴은 시몽과의 관계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로제와의 관계는 ‘속박’이었고 시몽과의 관계는 ‘자유’였으나 폴에게는 속박이 자유보다도 안온했기 때문이다. 시몽과 가까워지는 폴을 보고 자존심을 굽힌 로제가 사과하자 급기야 폴은 그 사과를 받아들인다. 작가는 그 사과의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다. “폴은 로제의 체취와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길을 잃은 기분도.” 

소설의 끝에서 로제는 어김없이 폴과의 약속을 미룬다. 과거 그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울 때 늘 그랬던 것처럼 저녁 늦게 전화벨이 울린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그러나 어쩌랴. 폴은 과거의 슬픔이 반복되더라도 다시 시몽을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렇게 답했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2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3년이라고 해두죠.” 작가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그가 보기엔 시몽이나 로제의 사랑 역시 영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이 진정한 사랑이냐’ 따위를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닐 테다. ‘사랑이 덧없다면, 우리는 자유를 선택해야 하는가 속박을 선택해야 하는가. 무엇이 더 보기 좋은가?’ 그것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김남주 옮김│민음사 펴냄│160쪽│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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