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노벨문학상에 고은 시인이?... 한국인 수상자 없는 이유
2020 노벨문학상에 고은 시인이?... 한국인 수상자 없는 이유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10.0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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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자신의 부고가 어떻게 쓰이게 될지, 또 어떻게 쓰이기를 원하는지를 생각해 보라” - 랍비 조셉 텔루슈킨 『죽기 전에 한 번은 유대인을 만나라』 中

삶을 조율하기 위해 자신의 부고를 미리 생각해 보는 사람이 간혹 있지만, 절대다수는 자신의 부고를 알지 못하고 죽는다. 죽음 이후에 부고가 나오니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데,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큰돈을 번 알프레드 노벨의 경우는 달랐다. 1888년 사망한 형(루드비그 노벨)을 알프레드 노벨로 오인한 어느 언론사가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사망하다”란 부고 기사를 내보내면서 비자발적으로 자신의 부고를 접하게 된 것이다. 강력한 힘이 평화를 낳을 줄로 알고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오히려 살상 도구로 사용되고, 그런 살상 무기로 돈을 번 장사치로 기억될 뻔한 상황에 큰 충격을 받은 노벨은 자신의 재산(가족에게 상속한 6%를 제외한 94%)으로 노벨상(본래 물리·화학·생리의학·문학·평화 다섯 개 부문이었으나 추후 경제학상이 추가됨)을 제정했다. (산업용 다이너마이트와 별도로 살상용 다이너마이트 판매에도 열을 올렸고, 오보 부고 기사 역시 실제 기사를 찾을 수 없는 스토리텔링된 이야기라는 주장도 있지만 노벨이 자신의 재산으로 노벨상을 만든 것은 사실임.)

200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수상으로 노벨평화상이 주목받았고, 올해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가 후보로 거론되면서 노벨화학상이 관심을 받았지만, 사실 여섯 개 부문 중 큰 관심이 쏠리는 건 노벨문학상이다. 문학이란 매개가 타 부문보다 거리감이 덜하고 문학 작품은 직접 감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심사하는 상으로 “이상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눈에 띄게 기여를 한 분”에게 주는 상이다. 노벨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부커상과 공쿠르상이 ‘작품’에 주는 상이라면 노벨문학상은 ‘작가’에게 주는 상이라는 특이점을 지닌다. 다만 1954년 어니스트 허밍웨이에게 시상하면서 심사평에 『노인과 바다』를 언급한 예외 경우도 있었다. 상금은 노벨기금의 일 년 이자 수익의 13%가량인 900만크로네(한화 약 11억원). 국내 세법상 외국 정부나 국제단체가 주는 상금에선 세금을 떼지 않기 때문에 수상자는 상금 전액을 오롯이 수령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혜택을 누릴 기회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노벨상이 지닌 유럽, 남성 중심주의 탓이 큰데, 실제로 지금껏 나온 116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여성 수상자는 14명에 불과하다. 1900년대 100년간 배출된 여성 수상자는 9명뿐이었으며, 2000년대 들어선 상황이 조금 나아져 20여년간 6명(▲2004 엘프리데 옐리네크 ▲2007 도리스 레싱 ▲2009 헤르타 뮐러 ▲2013 앨리스 먼로 ▲2015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자가 배출됐다. 또 유럽 편중이 심화된 모습을 보이는데, 실제로 역대 수상자 중 유럽 출신 비율은 69.8%(81명)에 달한다. 2017년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영국), 2018년 올가 토카르추크(폴란드), 2019년 페터 한트케(오스트리아) 모두가 유럽 출신이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한림원 위원인 작가 안데르스 올손은 지난해 노벨상 발표를 앞두고 “(노벨문학상이) 남성 중심과 함께 유럽 중심도 넘어서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오는 8일 발표를 앞둔 올해 노벨문학상에서도 한국인 수상자가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정위원(한림원 위원·역대 수상자·각국 문학 단체 수장 등)의 추천을 받아 18명의 한림원 위원 중 9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수상 자격을 얻을 수 있는데, 이렇다 할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도박사이트 ‘나이서 오즈’(nicer odds)에 따르면 올해 고은 시인이 수상 후보 공동 6위에 오르긴 했지만, 몇 해 전 미투 가해자로 지목됐고, (번역으로 의미를 살리기 어려운) 시를 다루는 시인이라는 점에서 수상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이다. 의성어, 의태어가 발달한 한글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 번역하기가 어렵기 때문인데, 한글의 맛을 잘 살린 조지훈 시인의 「승무」(“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처럼 시는 본래 느낌을 살린 번역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작품성이 뛰어나도 세계인의 감성을 사로잡는 데 현실 제약이 큰 것이 사실이다. 다만 중국과 일본이 각각 두 차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 외부 요인만 탓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책 읽지 않는 문화도 노벨문학상 배출이 어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몇 해 전 미국 문학평론가 마이틸리 라오는 문화교양지 <뉴요커>에 게재한 「한국은 정부의 큰 지원으로 노벨문학상을 가져갈 수 있을까」란 칼럼에서 “한국인들은 책도 읽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을 원한다. 30개 상위 선진국 가운데 국민 한 명당 독서 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며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 시기에 고은 시인의 이름이 거론되지만 정작 한국에서 고은 시인의 시는 많이 읽히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고, 충분한 공급 속에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자명한 이치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는 “노벨문학상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은 당황스럽다. 상은 그저 상일뿐이다. 좋은 작품을 쓰고 독자가 좋아하면 그것만으로도 작가에겐 충분한 보상”이라고 말했고, 그건 틀리지 않은 말이다. 다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품이 배출되려면 그만한 환경이 마련돼야 하고, ‘책 읽는 대한민국’이 그 토대가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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