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꿈… 인기 판타지 소설을 해몽해봤다
판타지=꿈… 인기 판타지 소설을 해몽해봤다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9.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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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최근 판타지 소설이 대세다. 대형서점 소설분야 주간 종합베스트셀러 10위권에는 판타지 소설 다섯권이 수 주째 올라있다. 『심판』과 『달러구트 꿈 백화점』 『보건교사 안은영』 『그 환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그 책들이다. 

‘『그 환자』는 호러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SF인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판타지라고 하면 으레 호그와트의 마법사들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비단 마술 지팡이나 빗자루가 나오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호러와 SF 역시 판타지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러니까 판타지는 현실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설정을 중심으로 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장르다. 쉽게 말하면 ‘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을 쓴 장르’이며, 한 마디로 뭉뚱그리면 ‘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판타지가 ‘꿈’이라면 우리는 그 꿈을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꿈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젖혔듯 말이다. 수잔 헤이워드는 책 『영화사전』에서 “판타지는 우리 무의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억압하는 영역, 즉 무의식의 영역과 꿈의 세계를 가장 쉽게 반영한다”고 말했다. 『심판』과 『달러구트 꿈 백화점』 『보건교사 안은영』 『그 환자』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지금 독자들이 꾸는 꿈이라면, 그 꿈은 어떤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에는 공정(公正)과 행복에 대한 욕구가 녹아있다. 이 소설(정확히는 희곡)은 한 남자가 천상에서 받는 재판 장면을 그린다. 그런데 천상에서는 ‘죄’의 기준이 지상과 많이 다르다. 남자는 경찰의 눈을 피해 신호위반과 속도위반을 수차례 저질렀는데,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저지른 죄조차 천상에서는 모두 죄가 된다. 뿐만 아니라 최상의 배우자를 찾지 못한 것,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안정적인 직업을 택한 것 등 행복을 추구하지 않은 것 역시 죄다. 독자는 공정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이 죄가 되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는 버거운 현실을 살아갈 용기가 담겨있다. 이 소설에서 사람들의 영혼은 그들의 육신이 잠든 사이 ‘꿈 백화점’에 들러 꿈을 산다. 흥미진진한 꿈도 있지만, 꾸는 사람의 트라우마가 담긴 악몽도 있다. 영혼이 악몽을 사오는 이유는 현실의 트라우마를 꿈속에서 맞닥뜨리기 위함이다. 즉, 어떤 사람이 악몽을 꾼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의미다. 꿈보다 해몽이지만, 이 소설의 인기는 악몽을 꿀 만큼 고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용기의 크기를 반영하지 않았을까.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양심적인 삶이 때론 바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가 숨어있다. 소설 속 안은영은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나쁜 영혼을 보는 사람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도리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만 그는 비비탄 총과 장난감 칼로 나쁜 영혼들을 해치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재스퍼 드윗(필명)의 『그 환자』는 오로지 공포만을 위해 쓰였다고 할 정도로 자극적인 호러 소설이다. ‘의료진을 미치거나 자살하게 만든 접근 금지 환자’인 조셉은 시종일관 악몽보다 무서운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 독자가 이런 자극적인 소설에 끌리는 이유는 코로나19로 집안에 박혀 있는 것이 너무나 무료했기 때문이리라. 이 소설이 공정이나 양심, 용기, 행복 같은 거창한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마지막으로,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표제작에는 가족들을 수만 광년 떨어진 어느 행성에 보내놓고 정작 본인은 그 행성에 가지 못하게 된 한 할머니가 등장한다. 우주여행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새로운 운항 기법이 개발됐으나, 과거의 운항 기법과 달리 그 기법은 할머니의 가족이 사는 행성에는 닿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기존의 운항 기법(빛의 속도보다 조금 느린)으로 가족들이 사는 행성에 가고자 하지만 우주여행 회사들은 높은 비용을 문제로 거절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할머니의 한숨 섞인 이 질문은 왠지 “우리가 끊임없이 진보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말로 들린다. 소설의 인기는 일정 부분 코로나19로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 독자들이 할머니의 말에 감응했기 때문 아닐까. 물론, 모든 해몽은 그저 해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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