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리가 보스와의 대화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
김 대리가 보스와의 대화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9.14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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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코드를 좀 멀리서 보면 어때요?” 케빈이 말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덧붙였다. “버그는, 그냥 버그죠. 버그가 케빈을 잡아먹는 건 아니니까.” - 책 『일의 기쁨과 슬픔』 中

장류진 작가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의 배경은 중고거래 앱을 서비스하는 회사다. 직원 열명 안팎의 작은 회사로 앱 개발은 케빈이 도맡고 있는데, 문제는 케빈이 몹시 예민하다는 점이다. 앱에는 으레 버그가 있기 마련이고, 버그는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수정하면 그만인데, 케빈은 버그 발생 통보를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면서 주변 직원들이 눈치를 보게 만든다.

다수가 함께 일하는 회사에서 이런 사람 한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의견 표시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회사 분위기를 경직시키고 의사소통에 경맥 동화를 일으키는 사람. 한 무역회사 총무과에서 5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모 대리는 “부서장이 워커홀릭이라 부서 업무가 많은 편인데, 업무 분담과 관련해서 불명확한 점이나 불편사항을 건의하면 부서장이 과도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사람이 완벽할 순 없는 건데, 부서장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짚거나 명확한 업무 지시를 요구하면 본인이 비난을 받는다고 생각해서인지 말을 꺼낸 사람을 민망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일을 한 번씩 겪으면 할 말도 안 하게 된다”고 토로한다.

여기서 질문. 위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왜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성격이 문제일까. 아니면 시스템이 문제일까. 이에 관해 전문가들은 ‘비난에 대한 두려움’을 이유로 지목한다. 비난받을 수 있는 상황이 두려워 의견 제시를 제한하고 아울러 자신의 능력과 판단을 정당화한다는 것. 기업 컨설팅 전문가 벤 대트너는 책 『비난 게임』에서 “(관리자나 임원은) 조직의 온갖 부정적인 표현과 시선을 빨아들이는 피뢰침 역할을 한다. 기업의 변화를 위해 투입된 관리자나 임원은 조직 내부의 거센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두려워 한다”고 말한다. 이어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책 『빈 서판』에서 “사람들은 시종일관 자신의 능력, 정직성, 관대함, 자율성을 과대평가한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면 어떻게든 생각을 바꿔서 인지 부조화를 해소한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조직은 시너지 효과를 잃고, 직원은 입을 다문다. ‘할까 말까’ 고민되는 말은 하지 않고, ‘할까 말까’ 고민되는 행동 역시 하지 않는다. 특히 단합과 예의를 중시하는 동양권 국가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한데, 이와 관련해 말컴 글래드웰은 책 『아웃라이어』에서 한국이나 콜롬비아처럼 권력 차이가 큰 나라에서 비행기 사고 발생 확률이 높은 건 부기장이 기장의 의견에 거스르는 말을 했을 경우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서구 사회도 완전 예외일 순 없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대인 경우 대화를 꺼리게 되고, 그로 인해 오해가 발생하기 쉬운데, 실제로 과거 영국에선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조언을 구하기 위해 “(철학자 이사야) 벌린 좀 데려와”라고 지시하자 처칠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비난이 두려워 되묻지 않은 담당자가 ‘(작곡가 어빙) 벌린’을 데려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1935년부터 1972년까지 40여년간 미국 FBI 국장을 맡았던 존 에드거 후버 역시 빽빽하게 쓴 보고서가 보기 불편해 “(문서) 가장자리를 잘 확인할 것”이란 지시를 내렸는데, 메모를 받아 본 비서관은 ‘가장자리’(border)를 ‘국경’으로 해석해 캐나다와 멕시코 국경 지대에 요원들을 급파한 바 있다. 이런 현상을 전문가들은 ‘몬더그린’(Mondergreen) 현상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경영학자 에이미 에드먼슨은 “안전한 환경과 편안한 환경을 구분하라”고 조언한다. 리더는 직원들의 업무 태만을 낳는 ‘편안한’ 환경을 배척해야 하지만, 업무 열의를 높일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은 장려해야 한다는 것. 편안하지 않은 상황에 누군가는 버티지만, 안전하지 않을 땐 대다수가 조직을 떠난다. 편하지 않아도 안전한 조직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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