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개혁의 도구로서의 영국 소설 (Ⅱ)
사회 개혁의 도구로서의 영국 소설 (Ⅱ)
  • 독서신문
  • 승인 2013.04.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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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의 _ 영국인의 삶과 의식을 계도한 영국 소설
 
 
 
[독서신문] 『제인 에어』, 『빌렛트』,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Jane Eyre, 1847)는 잘 알려진 것과 같이 제인이라는 천애의 고아가 자신의 진실만으로 음험한 세상과 대결해서 결국 행복을 쟁취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물론 저자 샬롯트 브론테의 삶의 기록은 아니다. 그러나 비유적인 의미에서는 사실적 자서전 이상으로 샬롯트 브론테 자신의 염원과 열정과 반항과 의지를 강렬하게 담고 있다. 체구는 왜소하고 외모도 볼품없고 재산도, 도움이 될 일가친척도 하나 없는, 세상을 살아갈 자본이라고는 오히려 세상을 사는 데 방해가 될 뿐인 확고한 도덕성과 정직성뿐인 여인이야말로 샬롯트 브론테가 도달하고자 하는 자신의 참모습이었을 것이다. 제인이 그녀의 강직성 때문에 겪는 수많은 고난은 샬롯트 브론테 자신이 의식의 심부에서 겪었던 고난이었고, 이 여인이 그 많은 역경과 도덕적인 시험을 다 거치고 얻게 되는 행복은 샬롯트 브론테가 생명을 던져 얻고 싶었던 그런 행복이었다.

『제인 에어』와 우열을 겨루는 브론테의 작품 『빌렛트』(Villette, 1853)도 역시 자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루시 스노우(Lucy Snowe)도 제인 에어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살아갈 아무런 자본이 없는 여인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계속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억압하기만 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욕망을 표출하면 그녀의 존재가 폭발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브랏셀에 와서 공연을 하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 바쉬티는 그 격하고 강렬한 감정의 표출 때문에 전율과 역겨움을 느끼게 하고, 그녀의 공연장이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물론 그녀의 정열이 화재를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그날의 관객들은 마치 그녀의 정열로 인해 극장이 타버린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19세기에, 유럽에서 아무 의지할 곳도 도와줄 사람도 없는 젊은 여성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는 길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비록 그 고통을 편지에 담아 땅에 묻고 길거리에서 혼절하는 한이 있어도. 그래서 『빌렛트』는 샬롯트 브론테가 주인공의 침묵을 빌어 절규하는 소설이다.

샬롯트의 동생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1818~48)의 유일한 작품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1848)이 영문학 사상 가장 독보적인 작품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19세기 영국에서 이토록 인습과 도덕률을 완전히 무시한 작품이 나온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다. 이 작품에는 독자의 상식과 양식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요소가 매우 많다.

선량하고 점잖은 에드가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는 캐시와 히스클리프의 사랑, 자기를 구박했던 캐시의 오빠를 철저히 고문하고 파괴하는 것은 물론 죄 없는 캐시의 남편과 딸에게까지 지옥과 같은 고통을 안기는 히스클리프의 복수심이 독자를 경악하게 한다. 그러나 캐시가 “내가 히스클리프야!(I am Heathcliffe!)”라고 외칠 때, 또 히스클리프가 죽어가는 캐시에게 유령이 돼서 자기에게 붙어 다녀 달라고 애원할 때, 캐시의 무덤을 파헤치면서 그녀가 해골이 된 모습을 본다고 해서 자기의 사랑이 식겠느냐고 말할 때, 독자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출간됐을 때는 기괴하고 잔인한, 소설 같지도 않은 소설이라며 반감을 사고 외면당했으나 점차 언니 샬롯트의 성공작 『제인 에어』를 능가하는 사랑과 격찬을 받았고 20세기부터는 독보적인 명작으로 확고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아마도 너무도 속악한 세상, 사랑도 이해타산을 초월할 수 없는 삶을 사는 독자들에게 모든 것을 무력화하는 핵폭풍과 같은 사랑의 위력이 주술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플로스 강가의 물방앗간』, 『미들마치』

죠지 엘리엇(George Eliot, 본명 매어리 앤 에반스 Mary Ann Evans, 1819~80)은 샬롯트나 에밀리 브론테보다 훨씬 다양한 경험을 했고 성취도가 높은 삶을 살았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에 충족되지 못했던 애정에의 갈구와 그녀가 겪은 여성으로서의 제약, 그리고 남다른 영적이고 지적인 욕망 때문에 겪은 많은 갈등이 그녀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 『플로스 강가의 물방앗간』(The Mill on the Floss, 1861)의 원동력이 됐다. 

엘리엇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플로스 강가의 물방앗간』의 여주인공 매기는 맨 처음 아홉 살의 소녀로 등장하는데 감수성이 강하고 상상의 세계에 몰입되기 쉬운 성격으로, 지극히 현실적이고 자기주장이 센 오빠 톰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이 작품은 죠지 엘리엇 자신과 오빠와의 가슴 아픈 관계의 역사를 극화하고 있다. 시골 목수의 딸로 태어났으나 당대 최고의 문인, 사상가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를 하고, 당시 시대적 이슈에 대한 논쟁의 장(場)이었던 웨스트민스터 誌의 편집장이 되기까지 했던 죠지 엘리엇이 끝까지 시골에 남았던 보수적인 오빠와 겪었을 감정적 갈등은 능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평자들이 죠지 엘리엇의 대표작으로 평가하는 『미들마치』(Middlemarch, 1871~2)는 4줄기의 이야기가 엮이면서 1830년대 영국의 사회사를 재현해 주는 대작이다.

이 작품의 중심 줄기의 여주인공 도로테아는 영적(靈的)인 의미에서 죠지 엘리엇의 분신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할 수 없었던 ‘숙녀’로서 도로테아는 무언가 숭고한 일에 일생을 바치기를 열망하는데 눈앞의 현실을 파악하는 데는 눈이 어둡다. 노학자(老學者) 카소본을 도로테아는 위대한 학자라고 믿고 시력이 망가져 가는 그의 저술을 돕기 위해 일생을 기꺼이 바치려 하나 도로테아의 현실적인 동생 세실리아는 그를 국을 먹을 때 듣기 불쾌한 소리를 내는 ‘밥맛 없는’ 노인네로 볼 뿐이다. 결국 카소본과 결혼한 도로테아는 카소본이 편협하고 위선적인 노인에 지나지 않는데 자신이 그를 실제와는 터무니없이 다른 사람으로 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카소본은 죽으면서까지 유언에서 도로테아가 “다른 남자와 결혼할 경우”에는 자기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도록 해서 도로테아가 사람들에게 이상한 의심을 받도록 만든다. 그 이후에도 도로테아의 관대하고 정의로운 성품에서 우러난 행동은 여러 가지 오해를 사지만 그녀는 선의와 도덕적 원칙으로 품위를 지키며 새로 발견한 진정한 연인과 결합해 행복도 차지할 수 있었다.
 
빅토리아조(1837~1901)의 작가들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당시의 혼미하고 불합리하고 비정한 사회에서 사회 개혁과 인간성 회복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사명감을 갖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작품들을 써냈다. 작가들이 몸소 경험한 유년기와 청년기의 고뇌는 그들의 작품에 깊이와 현실감을 더하고 독자들의 공감의 원천이 됐다. 그들이 느꼈던 부당함, 소외감, 박탈감은 그들의 소설을 통해서 사회개혁과 인간성 개조의 에너지가 됐다. 그래서 19세기는 소설이 인생의 스승 역할을 해냈고 또 그 공로를 인정받았던 소설 문학의 전성기였다. / 정리 = 윤빛나 기자
 
* 본고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인문강좌’(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지문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영국인의 삶과 의식을 계도한 영국 소설’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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