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행복의 본질과 개념의 변화를 추적하다 『행복의 역사』

2020-03-27     전진호 기자

[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행복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가장 적합해 보이는 어떤 전형적인 대답을 포기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행복이 얼마나 덧없으며 행복에 부여된 동기 또한 얼마나 개인과 시대, 문명에 따라 다르게 형성돼 왔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왜냐하면 행복은 명상에 있는 것만큼이나 구체적인 행동에도 있고, 영혼에 있는 것만큼이나 감각적인 만족에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은 빈곤만큼이나 번영에, 범죄만큼이나 미덕에, 이기주의적인 쾌락만큼이나 공동체적 실천에도 있다. 행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온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우리는 행복의 현존과 필요성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11쪽>

행복은 멜랑콜리라는 새로운 감정과 섞이고, 멜랑콜리는 인간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 예상되는 새로운 세계와 직면하는, 정의할 수 없는 슬픔을 시험하는 행복이 존재하고, 심지어 개척되지 않은 새로운 대륙을 탐색하거나 인간의 영혼을 어둡고 침침하게 만드는 심리적인 역설 속에서 결국 인간의 영혼을 동요시키는 감정의 무한한 복잡성을 음미하는 행복도 존재하게 된다. 이처럼 영혼이 확장되고 응집되는 반면에 신성한 이타성은 축소된다. 이 둘 사이에 모순을 만들고 멜랑콜리에서 행복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인간심리학의 역설은 ‘숨은 신’에 대한 신학적인 의문을 대치한다는 데 있다. 인간으로 부활한 예수의 신학에 존재하는 모순(신인 동시에 인간이라는)을 완전히 뒤집은 행위는 이제부터 내면, 즉 심리학의 규율로 자리 잡는다.<89~90쪽>

따라서 행복을 느끼려면 온갖 종류의 원대한 희망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하며, 진정으로 우리에게 의존하고 우리의 가시권에 포착돼 있으며, 우리의 내부에서 비롯된 것들을 원할 줄 알아야 한다. 친밀한 것들과 하찮은 것들을 천천히 음미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 우리는 하찮은 것에도 신이 임할 수 있다는 오래된 형이상학적 진리를 다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달리 말해 우리는 하찮은 것들의 행복,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의 행복이 만들어내는 우주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259~260쪽>

『행복의 역사』
미셸 포쉐 지음│조재룡 옮김│이숲 펴냄│312쪽│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