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고종의 밀사 헐버트의 한국 사랑 대서사시 『헐버트의 꿈 - 조선은 피어나리!』

2020-01-20     송석주 기자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1909년 뤼순감옥에서 안중근 의사가 한 말이다. 헐버트, 그는 누구인가? 1886년 23살의 나이에 헐버트는 조선으로 건너와 교육자, 언론인, 독립운동가로서 63년 동안 한민족과 영욕을 함께했다.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일본 외교는 속임수가 전부다.” “3.1운동은 세계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국심의 본보기.”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등 평생 한국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드러낸 헐버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회장이자 잃어버린 역사를 희망의 역사로 되살리기 위해 전 세계를 오가며 숨겨진 역사를 발굴하고 있는 저자 김동진은 “이 책을 통해 헐버트의 공적과 한국 사랑이 우리 역사에 올바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며 “우리 사회가 이기적 편리함보다 가치관적 삶이 더욱 주목받고,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민족정기가 살아 숨 쉬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헐버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미국 사람 ‘하루바토’를 만난 적이 있는가?” 안중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자가 왜 갑자기 헐버트의 이름을 꺼내는가? 안중근이 대답에 뜸을 들이자 사카이가 “하루바토를 만난 적이 있소, 없소?”라고 다그쳤다. 안중근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헐버트를 만난 적은 없소.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서는 아니 되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1909년 12월 2일의 일이다. 왜 안중근이 한 이방인에게 예를 갖춰 그리 최상의 존경을 표했을까?<23~24쪽>

헐버트는 1863년 1월 26일 미국 동북부 버몬트Vermont주 뉴헤이븐New Haven에서 아버지 캘빈 헐버트Calvin B. Hulbert와 어머니 매리(원명:Mary E. Woodward)의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34쪽>

“헐버트에 의해 아리랑이 우리 역사, 적어도 근대사에서 분명한 역사의 노래로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아리랑이 세계의 노래라는 위상을 갖고 있다면 그 배경에는 헐버트의 기여가 있었다. 이미 1세기 전에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서 한국 음악을 독립적으로 다뤄 오늘의 아리랑과 세계화를 예견한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 아니겠는가? 이러함에 우리가 아리랑 어록비를 세운다면 그 제1호는 당연히 헐버트 박사 아리랑 노래비일 것이다.<191~192쪽>

“먼저 한민족은 보통 사람도 일주일이면 터득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문자’인 한글을 발명했다. 한글은 각 글자마다 하나의 소리만 있는 우수한 글자다. 또 하나는 한민족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 전함’으로 일본군을 격파해 세계 해군 역사를 빛나게 했다. 또 하나 한민족을 빼어나게 만든 업적은 오래전 한 왕에 의해 고안된 ‘역사 기록문화’이다. 왕은 역사기록청을 만들어 국사를 편견 없이 적도록 하고, 3년마다 기록을 정리해 3부씩 책을 만들어 각기 다른 장소에 보관토록 했다. 이 기록들은 한민족의 절대적 기본 역사서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록문화는 세계사에서 유일하다.”<408~409쪽>

『헐버트의 꿈 - 조선은 피어나리!』
김동진 글│참좋은친구 펴냄│468쪽│2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