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이순신 조카가 쓴 이순신 전기 『작은아버지 이순신』

2019-10-31     송석주 기자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이순신의 삶을 온전히 기록한 최초의 기록은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이 지은 『행록』이다. 이분은 이순신의 큰형 이희신의 아들이다. 이순신 사후 십오 년 이후 집필된 것으로 추정된 『행록』은 이순신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 자료이다.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등과 함께 이순신의 생애를 조망해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기록 유산이다. 이 책은 『행록』의 한글 번역본이면서 동시에 이순신의 생애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책이다.

이순신은 1545년(인종 원년, 가정 24년) 3월 8일(양력 4월 28일) 자정 무렵 한성 건천동 자택에서 탄생하였다. 이순신을 보고 점쟁이가 말하였다. “이 아이는 나이 50이 되면 북방에서 부월(출정하는 장수에게 임금이 손수 주던 작은 도끼와 큰 도끼. 장수의 통솔권을 상징한다)을 손에 쥐는 대장이 될 것이다.”<9쪽>

7월 9일 이순신은 한 무리의 왜선이 안골포에 진을 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이억기, 원균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안골포에 이르렀다. 적들은 배를 쇠로 싸고 젖은 솜으로 가렸는데, 우리 군사를 보고는 죽기로 싸울 계획이었다. 어떤 자들은 총을 가지고 언덕 위로 올라가고, 일부는 배에서 항전하였다. 하지만 우리 군사들이 승세를 타고 적을 몰아치자, 그들은 당해 내지 못하였다. 언덕에 있던 자들은 달아나고, 배에 있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 적의 배 42척을 불태워 부수었다.<60쪽>

4월 11일에 이순신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이순신은 자신을 압송해 가는 의금부도사에게 간청하여 상복을 입고 길을 떠났다. 그는 통곡하며 말하였다. “나라에 충성을 다하려고 했건만 죄가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고, 어버이에게 효도하려고 했건만 어버이조차 돌아가시고 말았구나.”<93쪽>

이보다 앞서 이순신은 피란민들에게 명령하여 배를 옮겨 적을 피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누구도 이순신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그 모든 배들을 먼 바다에 늘여 세워 마치 후원하는 배처럼 꾸몄다. 그리고 자신은 앞으로 나가 힘써 싸움으로써 적을 크게 무찔렀다. 적은 우리 수군이 아직 왕성하다고 여겨 감히 다시 쳐들어오지 못하였다.<108쪽>

이순신의 부하들이 이순신 사당을 세우기를 청하였다. 조정은 그 청에 따라 좌수영 북쪽에 사당을 세우고, 충민忠愍이라는 편액을 내려주었다. 봄 가을에 두 번 제사 지내는데, 이억기도 함께 배향하였다. (중략) 호남 지방의 군인과 백성들은 이순신 추모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서로 다투어가며 사재를 털어 비석을 만들고, 관찰사에게 글 새기기를 청하였다. 관찰사는 진안현감 심인조를 보내 ‘이장군타루비’라고 써서 동명마루 위에 세우게 하니, 거기는 좌수영으로 내왕하는 길목이다.<140쪽>

『작은아버지 이순신』
이분李芬 지음│가갸날 펴냄│158쪽│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