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2019-09-30     송석주 기자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곳곳에 일제의 흔적들이 많다. 이 책은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해야 할 일제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듯이, 저자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기억한다.

책을 읽다 보면 생각보다 우리의 삶 근처에 일제의 잔재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옛 충남도청’ ‘군산 내항’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용산 거리와 철도 병원’ 등 식민지 역사의 아픔이 공기처럼 우리 곁에 스며있다. 아직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일제의 흔적들을 통해 앞으로의 역사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습득해보자.

조선식산은행은 대한제국 말기에 조선인들이 세운 농공은행 등을 합병해서 세워졌습니다. 민족 자본을 말살하는 동시에 경제적 수탈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죠. 실제로 조선식산은행은 일제가 진행한 산미증식게획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일찌감치 독립운동가들의 표적이 되었죠.<53쪽>

"당시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중이라 거칠 것이 없었지. 그때 용산 땅 상당수가 일본의 손에 넘어갔고, 군대가 주둔했단다. 그러면서 철도가 놓이는데 그게 바로 용산역이었단다."

노인호 교수의 이야기를 들은 동찬이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서 용산역을 바라봤다. 용사의 집 너머에 있는 용산역이 아주 조그마하게 보였다.

"지방에 내려갈 때마다 오는 곳이지만 그런 사연이 있는지는 까맣게 몰랐어요."

"허허벌판이라고는 했지만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란다. 하지만 일본군은 총칼로 그들을 몰아냈지. 그리고 일본인들이 들어왔어. 군인과 그 가족들 그리고 군대와 관련된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따라왔고 말이야. 아무래도 군대 근처에 있는 게 안심이 되었을 테니까. 그렇게 일본인들이 집과 상점을 짓고 모여 살면서 이곳은 1900년에 이미 전차 노선을 놓을 정도로 일본인의 천국이 되었지."<133~134쪽>

용산역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신용산역이 있습니다. 용산역이 확장되면서 거리가 더 가까워진 셈인데요. 신용산역에서 전쟁기념관 방향으로 가면 삼각지역이 보입니다. 삼각지역 1번과 2번 출구로 나오면 용산역 근처 골목에서 본 것 같은 옛날 건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 역시 옛날 용산역과 관련된 각종 창고나 회사, 주택들이 즐비하게 세워졌던 곳입니다. 지금은 용산초등학교가 된 용산 소학교도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습니다. (중략) 그렇게 보물 찾기하는 것처럼 지나간 흔적들을 찾으면서 골목을 걷다 보면 특이한 2층 건물 한 채와 마주치게 됩니다. 바로 1926년에 만들어진 간조(間組)라는 건축 회사의 경성 지점입니다. 모서리에 곡선형으로 출입문을 낸 형태로 여러모로 눈에 확 띕니다. 현관문과 계단 그리고 1층 창문 아래 기단 부분은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벽면은 노란색 타일이 붙어 있습니다. 창문을 좁고 길게 만들어서 촘촘하게 배치한 것이 눈에 띕니다. 아마 햇빛을 최대한 많이 들어오게 하는 동시에 건물이 높이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147~148쪽>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의 궁궐들은 엄청난 수난을 겪에 됩니다. (중략) 창덕궁과 붙어 있던 창경궁은 더 심한 모욕과 훼손을 겪습니다.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박석과 품계석을 모두 치우고 일본식 정원을 조성하고 연회를 즐겼다고 합니다. 창경궁 안에 일본식 정원과 건물을 짓고 동식물들을 들여와서 식물원과 동물원을 만듭니다. 이름도 아예 창경원으로 바꾸는데 일본의 상징인 벚꽃을 심어 놓고 벚꽃 놀이까지 즐깁니다.<187쪽>

『역사 탐험대, 일제의 흔적을 찾아라!』
정명섭 지음│노란돼지 교양학교 펴냄│190쪽│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