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전 오로지 제가 되고 싶습니다 『가정법』

2019-09-16     송석주 기자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죽은 척을 해보시겠습니까?
죽은 척을요?
네, 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고 숨을 멈춰보세요.
왜 그렇게 해야 하죠?
죽은 척은 당신을 당신이라는 사람처럼 보이게 해줄 거예요. 시체. 환자 분의 시체 말이죠.<49쪽>

그들은 나를 본체만체했어. 형광등 빛이 돼 있었거든. 나는 그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알아볼 수 없었지. 어둠 속에선 존재감이 있지만, 밝을 땐 뭐랄까 투명인간 같았거든.<79쪽>

오해예요. 나 역시 순수하지 않아요. 우리 관계의 핵심이 돈인 것도 인지하고 있어요. 당신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우리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 말이죠.<91~92쪽>

넌 누구지?
내가 속삭였다.
휴지통.
그녀도 속삭였다.
어떻게 휴지통이 됐어?
취직이 안 돼서.
저런.
왜 이렇게 알짱거려. 귀찮게 굴지 말고 꺼져.<122쪽>

어린 시절 제 꿈은 물리학자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가수가 되고 싶었죠. 지금은 꿈은 잊은 지 오래입니다. 죽지 못해 살고 있죠. 그런데 그날 이후 꿈이라는 글자가 마음속에서 꿈틀거립니다. 전 뭐가 되고 싶은 걸까요?<244쪽>

『가정법』
오한기 지음 | 은행나무출판사 펴냄│268쪽│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