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어둠을 밝힌 정치 철학자의 삶 『한나 아렌트』

2019-09-09     송석주 기자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그녀는 많은 것에 충실했다. 자신의 뿌리인 독일어와 문화에, 유럽에 있는 옛 친구들과 미국에서 새로 얻은 친구들에게 충실했다. 그녀는 언제나 다시 시작했고 따라서 그녀를 어느 하나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녀는 한 회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보수주의자입니까? 자유주의자입니까? 현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릅니다. 과거에도 그것을 안 적은 없었습니다.”<6쪽>

한나는 마르부르크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에른스트 그루마흐로부터 젊은 철학 강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철학 강사는 아직 중요한 저술은 없었지만 그의 강의는 모든 청중을 매혹시킨다고 했다. 그는 박식함을 어려운 말로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다른 교수들이 불친절하게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정말로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고 했다. 이 강사가 바로 마르틴 하이데거였다. 한나가 하이데거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한나는 그에게 배우기 위해 마르부르크로 가리라는 결심을 굳혔다.<45쪽>

1925년 여름 한나 아렌트는 한 학기 동안 에드문트 후설에게서 공부하기 위해 프라이부르크로 간다. 그녀는 이제 마르부르크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하이델베르크로 가려고 했다. 하이데거가 그렇게 하라고 충고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곳 대학에서 하이데거의 친구인 카를 야스퍼스에게서 박사학위를 딸 예정이었다. 24년 후 한나는 자신이 마르부르크를 떠난 것은 오로지 하이데거 때문이었다고 그에게 고백한다.<57쪽>

시온주의에 대한 한나의 입장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녀가 시온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그것이 유대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적 수단을 모색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자적인 유대인 국가 수립이라는 시온주의의 목표는 거부했다.<87쪽>

한나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 이미 이렇게 예언한다. “이번에 커튼이 내려지면, ‘우린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외치는 속물들의 합창을 듣게 될 것이다.”<124쪽>

이와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더 있다면,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독일에서, 유럽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세상은 얼마나 달라 보이겠는가. 한나 아렌트는 이 어두운 시대에서도 희망의 빛을 놓치지 않으려 한 것이다.<317쪽>

『한나 아렌트』
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 김경연 펴냄│320쪽│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