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미생물과 플라톤이 만났을 때… 생물학과 철학의 우아한 이중주

2019-03-30     김승일 기자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개념 없어 보이는’ 미생물과 ‘뭔가 있어 보이는’ 플라톤이 원탁에 마주 앉았습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플라톤이 쩔쩔맵니다. 온갖 논리를 구사합니다만, 듣도 보도 못한 미생물의 반응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합니다. 결국, 고매한 플라톤은 자기 생각을 바꾸기까지 합니다. 매번 철학자를 미궁에 빠트리는 영리한 미생물과 묻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미련한 철학자, 이 둘의 토론 장면엔 뭔가 코믹한 반전이 있지 않나요? 이 책의 곳곳에는 이런 반전 포인트들이 반쯤 숨겨진 채 박혀 있습니다. 미리부터 어렵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보물찾기하듯 즐겨봤으면 좋겠습니다. <11쪽>

이 책의 목적은 이질적인 두 학문, 곧 생물학과 철학 사이의 짜릿한 ‘조율’을 유지함으로써 사유를 폭넓게 ‘확장’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데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조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상외로 둘의 차이가 큰데다가 무조건 차이를 제거한다고 저절로 조율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둘을 조율하기 위해 먼저 각각의 영역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즉 생물학과 철학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생물학은 경험과학의 한계를, 철학은 사변의 무능력을 철저하게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전제조건일 때 비로소 두 분야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접점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14쪽>

진화의 방향이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추측컨대, 이른바 ‘고등’하다는 생물일수록 지구상에 늦게 출현한 사실이 이런 흔한 오해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란 진보나 발전 개념이 아니라 오랜 시간 걸쳐 일어나는 변화의 축적 또는 다양성의 증가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생물종이 탄생했다 사라졌죠. 화석 증거에 근거해 고생물학자들은 보통 생물종의 수명을 100만~1,000만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소 36억년에 달하는 생명체의 역사에 이 수치를 적용하면, 과거 한때 지구에 살았던 생물 가운데 99% 이상이 멸종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런 멸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박테리아를 포함해서 하등한 생명체로 치부되는 단세포 생물들은 굳건하게 버텨왔죠. 오히려 이들이 가장 생존력 높은 강자일 수 있습니다. <77쪽>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
김동규·김응빈 지음│문학동네 펴냄│272쪽│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