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현대인은 어떻게 기쁨과 희열을 추구하는가

2019-01-03     김승일 기자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열렬한 욕망이나 열정으로 미치는데, 우리는 좋아서도 미치고, 아파서도 미치고, 연인이나 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도 미친다. 이 열정, 아름다움과 본능적 직관의 세계는 이성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다. 예술가들은 이 세계를 꿈꾸며 ‘신들의 정원’이라는 은유를 사용했다. 본능과 감각이 열어주는 풍요와 환희의 세계가 존재한다. 이는 초월적 영역이다. <7쪽>

영적 경험의 핵심은 정신의 낚아챔, 사로잡힘이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모네의 ‘수련’ 그림 앞에서 넋을 놓고 몇 시간을 눈물 흘리며 서 있었다고 한다. 아이가 예뻐 넋을 놓고 황홀해 하는 엄마는 사랑 그 자체, 곧 신으로 화한다. 자신보다 더 큰 힘에 낚아채지는 경험. 엑스터시와 조이는 숨어있긴 해도 우리 일상에 널려있다는 게 내 믿음이다. <18쪽>

오늘날의 문화와 가치는 우리로 하여금 외적인 면에서 거친 디오니소스적 요소를 표현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현대인은 예술이나 의례, 의식과 같은 보다 은근한 방식의 디오니소스적 요소를 추구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디오니소스를 담아낼 수 없다면 우리의 길들여진 서양의 정신 기능은 무색무취로 말라버리고 말 것이다.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등 오늘날의 “관전 스포츠”는 결국 그 안에 든 정제된 디오니소스 요소를 현대인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나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은 늘 인간에게 의례와 자원 역할을 했다. 표현할 수 없는 걸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말이다. 사실 예술을 인간의 다른 표현 양식과 분리시킨 것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현상이다. 고대 문화는 유사 영적 일체감을 갖고 있었다. 그 시대의 예술품들을 생각해보라. 도자기, 조각, 봉헌물, 그림, 거주지, 심지어 무기들까지도 고대인들에게는 영적 차원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그들에게 영적 차원은 의심할 나위 없이 삶의 일부였다. <178~179쪽>

『희열Ecstasy 기쁨Joy의 심리학』
로버트 A. 존슨 지음|이주엽 옮김|동연 펴냄|194쪽|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