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몰락한 사대부 이중환, 그는 왜 택리지를 쓰게 됐나?

2018-11-02     김승일 기자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청담이 독창적 저술을 짓게 된 동기는 대략 다섯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정계에서 완전히 몰락하고 사대부 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척당한 지식인의 자기표현 욕구이다. 1725년 이후 청담은 30여 년 동안 관계에서 완전히 축출된 상태로 지냈다. 만년에 당상관 품계를 받기는 했으나 죽을 때까지 정치적 상황이 호전되지 않았다. (중략) 주변이 너무도 괴괴해 살아 있어도 산 사람 같지 않았다. (중략)

둘째는 지은이에게 닥친 실존적 위기다. 살육전으로 치달은 극심한 당쟁에서 패배해 생존의 위기에 내몰렸고 유배를 벗어난 이후에도 만년까지 생계를 잇기 힘들 만큼 궁핍해졌다. (중략) 그런 처지로 몰린 청담은 궁핍을 혼자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사대부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로 간주했고, 오랫동안 직접 겪고 견문해 얻은 정보를 종합해 비슷한 처지의 사대부에게 새로운 주거지를 골라서 살아보라 제안했다. 청담의 제안은 실존적 위기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었다. (중략)

셋째는 지리와 경제에 대한 청담의 관심이다. 특히 경제적 관점은 청담이 지리를 보는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요인이다. 청담이 학문과 정치의 모델로 삼은 허목은 이 저작에서 조선 팔도를 권역별로 묘사하되 자연지리보다는 풍속과 인심 물산 등에 더 비중을 뒀다. 청담이 60세 전후해 이익에게 몇 종의 저술을 보여줬을 때 이익은 몸과 집안을 다스리는 내용에서 산천, 토속, 풍요, 물산에 이르기까지 갖춰 기술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요컨대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고 평했다. <12~14>

중년, 잠시 멈춤
이중환 지음안대회·이승용 외 옮김Humanist 펴냄5603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