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인 북] 1년 하루 20분, 쇼팽 ‘발라드’ 완주에 도전하다

앨런 러스브리저 『다시, 피아노』

2017-01-06     이정윤 기자

[리더스뉴스/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 작품 23’. 피아노 레퍼토리 가운데 가장 난곡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위대한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가 ‘가장 어려운 레퍼토리’라고 경고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 쇼팽의 ‘발라드’를 완주하겠다며 당당히 출사표를 던진 이가 있다. 1995년 기자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편집국장 자리에 올라 2014년 12월, 20년 만에 물러난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의 전설적 인물 앨런 러스브리저다. 

그는 2010년 피아노 캠프에 참가했다가 아마추어 연주자가 쇼팽의 ‘발라드’를 치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그때 그는 ‘발라드 1번’을 배운 뒤 공개적인 자리에서 연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시한은 1년 남짓하게 잡았다. 

그렇게 ‘발라드’와 함께 보낸 한 해 남짓 동안 앨런은 꾸준히 일기를 썼고 하루 20분씩 피아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곳이 내전 중인 황량한 호텔 레스토랑일지라도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2011년 12월 13일,  앨런은 깊이 심호흡을 하고 엄지와 검지를 그러쥔 뒤 옥타브 C를 내리쳤다. 초반은 썩 괜찮게 넘겼고, 사정을 봐주지 않고 맹렬히 몰아치는 음표의 격류에 통제력을 잃을 뻔도 했으나, 그의 손은 시작했던 모양 그대로 건반 위에 놓인 채로 마무리를 지었다. 

관객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내면서 기나긴 여정도 끝이 났다. 앨런의 승리였다. 

■ 다시, 피아노 (Paly it Again)
앨런 러스브리저 지음 | 이석호 옮김 | 포노 펴냄 | 624쪽 |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