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대하여

'현대시 해설'

2014-08-19     독서신문

                                            정호승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이해와 감상]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형상화 작업

시란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한 수수께끼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빼어난 시인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다 제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것을 노래한다면 그것은 흔한 보통시다. 지금까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을 우리 눈앞에 시각화시켜 보여주는 것이 21세기 시인의 능력이 아닌가 한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제1연).

시인 정호승은 우리가 아직 못 보거나 찾아내지 못한 ‘바닥’의 세계를 우리 앞에 보여주는 가시화(可視化) 작업을 해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비로소 그가 보여주는 ‘바닥’의 세계를 새롭게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시작법(詩作法)의 하나의 전범이다. 물론 정호승은 ‘바닥’ 그 자체를 우리에게 리얼하게 보여준 것은 아니다. 그는 바닥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우리들의 일상의 눈에 보인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시인의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프랑스 상징파의 거장 알튤 랭보(N.Artur Rimbaud.1854~1891)는 “찾아냈어! 무엇을? 영원. 태양에 녹아버린 바다” 이렇게 그가 외쳤을 때 그가 목격한 것은 ‘영원’이었다. 지금까지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던 ‘영원’에의 이미지를 비전(Vision)으로 보여준 것이다.

/ 홍윤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