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우리는 왜 존재하지 않는 ‘인종’을 믿는가

2022-11-04     김혜경 기자
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1950년에 유네스코는 모든 인간이 동일한 종(種)에 속하며 ‘인종’은 생물학적 실재가 아니라 신화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류학자, 유전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이 모인 국제 패널에서 방대한 연구를 일별해 발표한 성명이었다. 이 무렵이면 이 결론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가 많이 쌓여 있었고, 여기에 관여한 과학자들은 인간 집단 간 차이를 실제로 연구하고 있으며 이 주제에 대해 가장 많은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7쪽>

불행하게도, 생물학적 토대에 따라 구분되는 인종이 존재한다는 믿음과 함께 미국과 서유럽에 인종주의가 여전히 만연해 있다. 사실이 아니라는 과학적 근거가 그토록 많은데도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교육받은 사람 대부분은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 집단 간의 차이와 관련해 현대 과학이 알려주는 바를 받아들이기는 훨씬 어려워한다. 왜 그럴까? 인종이 실재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수반되는 ‘인종주의’의 편견과 혐오가 너무나 오랫동안 문화에 뿌리박혀 우리 세계관의 일부가 되어버린 나머지, 많은 이들이 그냥 사실일 게 틀림없다고 가정해 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8쪽>

반인종주의자가 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일이어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어서이기도 하다. 생물학적으로 인종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으므로 인종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과학적으로도, 다른 어떤 면으로도, 그러한 위계는 불가능하다! <269쪽>

우리는 인종이 생물학적 실재는 아니지만 문화적 실재임에는 명확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서로 다르지만, 주된 차이는 그들이 자라온 환경과 문화 때문이지 불변한다고 하는 모호한 생물학적, 유전적 차이 때문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말해서 호모 사피엔스는 하나의 종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역사를 알아야만 언젠가 모든 사람이 인종과 문화에 관계 없이 존엄, 평등, 친절을 누리는 존재로서 대우받는 사회를 일굴 수 있을 것이다. <362쪽>

[정리=김혜경 기자]

『인종이라는 신화』
로버트 월드 서스먼 지음 | 김승진 옮김 | 지와사랑 펴냄 | 432쪽 | 2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