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우리를 붕괴시키는 ‘가짜 노동’에서 벗어나자

2022-08-12     김혜경 기자
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집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많은 훼방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의가 취소되었으나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 사람들은 갑자기 하루치 업무량을 단 두세 시간 만에 완수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두 뭔가 하느라 늘 바빠 보여야 했던 일터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방종, 예컨대 창문을 내다보며 생각을 가다듬는 행동을 해도 괜찮았다. 즉, 가짜 노동에는 관중이 필요했던 것이다. 관중이 없을 때 우리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너무나 많다. <11~12쪽>

가짜 노동을 피하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은 우리가 노동을 이해하고 보상하는 방식, 무대 앞 노동의 전성기에 고안된 합리성에 머물러 있는 방식에 도전하는 것이다. (…) 우리는 아마도 ‘노동시간’이라는 관념 자체를 버릴 때만 완전한 변화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270쪽>

직장에 출근해서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심각하게 길게 느껴진다. 결국 지루함은 실존적 고통에서 수치감으로 전환된다. 왜냐하면 유용한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며 일을 통해 세상과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쓸모없어진다는 것. 그러면서도 대가를 받는다는 것은 자기혐오와 수치감으로 이어지며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 빚진 기분을 느끼게 한다. <281쪽>

헤겔과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만 세계에서 소속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또한 노동이 인간을 세계에서 소외감을 느끼도록 만들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인간의 성립과 붕괴가 모두 노동에 달려 있다. <324쪽>

마르크스는 사무직보다는 산업 직군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산업 노동자가 소외됐다고 보았다. 산업 노동의 과정이 더 이상 세계와의 유기적 상호작용이 아니고, 보트 제작자가 자신이 만든 보트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처럼, 노동자가 외부화된 내면의 형태로 자신을 돌려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
비슷하게 포스트모던 (사무직) 노동의 특성, 즉 시간 엄수, 해결책 개발, 모방, 과시성, 감사, 회의, 홍보와 규제 같은 것이 노동자를 소외시키며 노동자가 하는 일에서 더 이상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게 한다. <326쪽>

[정리=김혜경 기자]

『가짜 노동』
데니스 뇌르마르크, 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펴냄 | 416쪽 | 1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