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주의 영화롭게] 시(詩)를 품은 영화, ‘한강에게’와 ‘정말 먼 곳’

2021-03-28     송석주 기자

박근영의 영화는 ‘바라보다’라는 동사를 닮았습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보다’라는 뜻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일에 희망을 갖다’의 뜻도 있지요. 그의 카메라는 미혼모, 치매 노인, 퀴어 등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찬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근영의 영화는 시(詩)의 본질과 궤를 같이 합니다.

그의 데뷔작 <한강에게>(2019)는 불의의 사고로 연인을 떠나보낸 시인 ‘진아’의 일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진아는 짐짓 괜찮은 척하며 평소와 마찬가지로 시를 쓰거나 친구와 만나는 등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보냅니다. 카메라는 그 모든 순간을 진아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고정된 상태로 바라보고 있어요. 이러한 카메라 움직임은 그의 신작인 <정말 먼 곳>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인 ‘무인도 여행 시퀀스’가 대표적입니다.

퀴어로 살아가는 진우와 현민은 작은 무인도에 텐트를 치고 낚시를 하며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특히 카메라가 해질녘의 어스름한 빛에 반짝이는 강물을 화면의 중앙에 두고, 진우와 현민을 오른쪽 구석에 프레이밍하는 방식이 인상적인데, 이때 카메라는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고정된 상태로 포착합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언어적 수단 없이, 오로지 이미지만으로 관객을 황홀경에 들어서게 하는 영화적 힘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박근영의 영화는 ‘시적 이미지’로 점철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학자 아르토는 ‘시적 영화’라는 개념을 주장했는데, 그는 “언어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시각적 표현수단을 통해 꿈의 세계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는 영화를 ‘시적 영화’”(김호영, 『영화이미지학』, 문학동네)로 정의했습니다. 말하자면 박근영은 언어적 수단인 ‘대사’보다 비언어적 수단인 ‘이미지’에 집중하여 영화를 한 편의 시처럼 ‘바라보게’ 만든 것이죠.

박근영의 영화에 시인이 자주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유 역시 이런 논의와 연결됩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시인(<한강에게>)이며, 퀴어의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가는 시인(<정말 먼 곳>)입니다. 카메라는 그들의 삶에 함부로 다가가거나 끼어들지 않습니다. 또 인물을 화면의 중앙이나 전경에 배치하지 않고, 주로 가장자리나 후경에 둠으로써 관객에게 빈 공간을 응시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여백의 이미지가 많습니다.

메를로 퐁티는 “사물 사이의 간격-예를 들어 가로수 사이의 공간-을 사물로 보게 되고 사물 그 자체-거리의 가로수-를 배경으로 볼 수 있게 되면, 우리의 세계상은 전복될 것”(이윤영, 『사유 속의 영화』, 문학과지성사)이라고 말했습니다. 시가 행간의 의미에 집중하듯 박근영의 영화는 인물과 인물 혹은 인물과 세상 사이의 거리에 집중합니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관객에게 시적 사유의 장을 선사하는데, 그 장소가 바로 양자 사이의 거리인 셈이죠.

이처럼 박근영은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인물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의 거리를 탐문하는 감독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빈 공간과 여백의 이미지로서의 거리는 그의 말처럼 떠나온 사람과 머무는 사람, 탄생과 죽음, 가족과 이웃처럼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것들 혹은 멀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