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죽음을 통해 다시 보는 '엄마'라는 이름 『물 그림 엄마』

2021-03-19     안지섭 기자
어떤 책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큰 감동을 선사하고 알찬 정보를 제공합니다. ‘책 속 명문장’ 코너는 그러한 문장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입니다.

[독서신문 안지섭 기자] 그러나 반복되어 익숙해지는 기적은 기적일 수 없었다. 엄마가 세 번쯤 살아나자 고비를 넘기셨습니다 하는 의사들의 목소리에 차츰 권태가 꼈다. 이건 기적입니다라고 더 이상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10쪽>

그건 일종의 생존 확인이었다. 밤새 안녕을 확인하는 일. 혼자 죽는 것보다 죽었는데 아무도 모르는 게 더 두려운 마음은 이해가 됐다. 그렇지만 저승 문을 업고 다닐 나이에 그렇게 뻔질나게 고하는 안녕이라니. 좀 징글징글한 느낌도 들었다.<78쪽>

할머니와 나는 오랫동안 서로를 미워하거나 구박하거나 증오했다. 그런데도 결국 이렇게 둘만 남았다. 우리는 서로 미워했지만, 다른 사람은 우리에게 아예 무관심했다<110쪽>

처음 그 이야기를 듣던 날 나는 마음부터 몸까지 모두 덜덜덜 떨었다. 지어 낸 이야기여도 무서웠고, 사실이라면 더더욱 무서웠다. 혹시라도 내 심장에서 두 개의 심장이 쿵쿵거리는 걸 듣게 될까 봐 잘 때라도 가슴에 손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그 이야기가 사실 같았다. 사실이었으면 싶기도 했다. 여전히 무서웠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상상하면 한편으로는 놀랍고, 신비하고, 경이롭고, 황홀했다. 그러면 그게 진실이 아닌가 싶었다.<129쪽>

아이를 사랑했다. 그러나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어느 쪽이 진심일까. 잠들고 싶지만 잠들기 두려운 날 같은, 그런 사랑이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162쪽>

『물 그림 엄마』
한지혜 지음 | 민음사 펴냄 | 268쪽 |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