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랑의 필연적인 ‘맹점’ 『여자 없는 남자들』

2020-12-24     김승일 기자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아이가 죽고 나서 시작된 아내의 외도를 알고도 모른 체하며 살았던 남자 가후쿠. 아내가 죽어버리자 그는 전보다 더 크게 괴로워한다. 대체 아내는 어째서 외도를 했을까? 부부 관계는 괜찮았는데 도대체 왜? 그는 아내가 마지막으로 외도한 남자 다카스키를 마주한다. 그에게 복수할 생각, 그에게서 아내의 자취를 찾으려는 생각, 그리고 왠지 이상하게 그가 마음에 든다는 생각이 뒤섞인다. 

몇 번의 술자리 후 가후쿠는 다카스키와 친구가 돼버린다. 동병상련이랄까. 가후쿠는 사실 다카스키도 그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생전 가후쿠의 아내는 남자들을 여러 번 갈아치웠고, 몇 개월 만남 후 전부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래서 다카스키는 가후쿠의 아내가 죽기 일주일 전에야 그녀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후쿠가 아내의 외도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다카스키 역시 그녀가 자신을 정리한 이유를 끝내 알지 못했다.  

술자리에서 가후쿠는 말한다. “우린 이십 년 가까이 함께 살았고, 친밀한 부부이자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어. 어떤 일이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고 말이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나에게 치명적인 맹점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몰라.” 

그러자 다카스키는 말한다.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우리가 속속들이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거예요. 상대가 어떤 여자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가후쿠 씨만의 고유한 맹점이 아닐 거예요. 만일 그게 맹점이라면 우리는 모두 비슷한 맹점을 안고서 살아가고 있는 거겠죠.”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더라도 사랑하는 상대의 마음을 전부 알 수 없다. 평생 모르는 채 살아간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랑 앞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맹점’을 지니는 셈이다. 눈에 있는 맹점을 없앨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영원히 그 맹점을 떼어낼 수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이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적어도 모른 체할 때 우리는 그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다.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문학동네 펴냄│340쪽│1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