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하늘에서 내려다본 인간의 ‘죄’ 『심판』

2020-09-17     김승일 기자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천상에서 재판이 열리고 검사가 피고인을 심문한다. 

“피숑씨는 신호 위반을 837차례, 속도위반을 1,525차례 저질렀어요. 하지만 이에 대해 어떠한 처벌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피고인은 “경찰에 걸린 적 없어요”라고 변명해보지만 검사는 “경찰은 못 봐도 우리는 봤어요”라며 다른 죄목을 읊는다. “음주 운전 317차례, 다른 운전자들을 향한 욕설 587차례, 저속한 제스처 1,733차례, 기타 위반도 수천 건이 넘습니다.” 

그리고 검사는 ‘죄’의 범위를 확장해나간다. 이제 그는 어째서 행복을 누리지 않았는지 추궁하기 시작한다. 가령 천상배필인 사람을 배우자로 고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되는대로 결혼해 아내에게 권태를 느낀 것은 죄다. 재능을 찾으려 하지 않았거나, 찾았음에도 등한시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은 것도 죄다. 신이 피고인만을 위한 행복한 삶을 마련해놓았는데 그것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숑씨, 당신은 배우자를 잘못 택했고,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삶을 잘못 택했어요! 존재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포기했어요. 순응주의에 빠져서!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만 했죠. 당신에게 특별한 운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이 소설은 이렇게 ‘죄’를 바라보는 관점을 인간 세상에서 천상으로 바꾸며 결국 독자로 하여금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한다. 만약 하늘 위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가 우리에게 각자 다른 행복한 삶을 선물했는데 그것을 열어보지도 않고 집어 던져버렸다면…. 나도, 당신도 죄인이 아닐까?     

『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전미연 옮김│열린책들 펴냄│224쪽│12,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