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태동을 밝히다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

2020-09-07     송석주 기자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소수민족의 역사문화를 중원의 역사문화 속으로 끌어안으려는 중국이 동북 지역 역사 공정 중에 왜 돌연 태도를 바꿔 백두산 서편 옛 제단군을 은폐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것이 우리 상고·고대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책이다. 백두산 서편 일대에서 후기 신석기 이래 고구려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제천문화의 실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책.

현재까지 중원 지역에서 나온 가장 이른 시기의 단인 수당대 천단은 1999년 수당대 도읍인 장안(현 서안)에서 발굴됐다. (중략) 4층식은 배달국 이래 동아시아 적석 단총의 기본 계단수였던 3층식에서 벗어난 방식이다. 민간의 소소한 제단이 아닌 중원왕조의 최상급 황실 제단에서 3층식이 아닌 4층식이 채택된 이유는 상고 이래 동북아의 유서 깊은 3층식 전통에 대한 무지라기보다는 중국적 세계관인 음양오행론을 우선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531~533쪽>

천지단(기곡단‧기년전)과 천단(환구단)은 형식면에서 배달국시대 단총의 기본인 ‘3층원단’ 형식을 그대로 잇고 있다. 곧 천지단은 3층원단위에 3층의 제천건물지가 자리한 모습이다. 또한 천단은 3층원단으로 특히 4방향으로 난 계단이 9층계인 점, 꼭대기층의 바닥돌이 9배수 방식으로 확산돼 나가는 점 등에서 삼원 구조가 나타났다. 이원 구조가 드러난 수당대 천단과 판이하다.<534쪽>

한반도‧만주‧중원 지역에 이르는 광역의 ‘산신도’ 분포 권역 중 핵심 분포 지역은 단연 한반도 지역, 곧 배달국‧단군조선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승계한 한국 사회이다. 종래 한국의 산신도는 무신도(巫信圖) 차원으로 인식돼 왔지만, 1980년대 이후 고고학의 발달로 배달국사가 복원돼 가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단군사화, 또는 단군사화 형태로 압축된 한국상고사를 한 편의 그림 형태로 요령 있게 담아낸 농밀한 역사화로 바라보게 된다.<614~615쪽>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
정경희 지음│만권당 펴냄│744쪽│4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