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백제인도 구구단을 외웠다? 『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2020-09-02     서믿음 기자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목간은 글자가 적힌 나무 조각으로 중국 한나라 때 종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널리 쓰인 기록 도구였다. 목간은 주변에서 구하기 쉽고 작고 가벼워 기록 도구로 널리 쓰였는데, 그 안에는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생한 문자 자료가 기록돼 있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목간 연구가 시작된 건 1999년 부여 궁남지에서 목간이 발견되면서부터이며, 지금껏 발굴된 목간은 500여점, 그중 100여점이 백제 목간이다. 그리고 그 안엔 백제인의 생활상을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자료들이 담겼다. 

경주

중국에서는 앞면에만 글씨를 쓴 것이 많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삼각형, 사각형 또는 다각형 나무막대의 각 면에 문자를 기록한 고가 일찍부터 만들어졌다. 고는 군대의 명령서인 격서나 아동용 습자 교본, 기록물의 초안 작성 등에 사용됐다. <20쪽> 

사언사구의

사언사구라는 일정한 운문 형식을 갖추고 있고, 한문의 어순과 한국어 어순이 혼재한 백제 최초의 시가로, ‘숙세가’라 명명하기로 한다. 
해석문 – 앞면: 전생에서 업을 맺어 같은 곳에서 함께 태어났으니, 시비를 서로 물으랴! 부처님께 절을 하고 사뢸 것인저. 뒷면: 혜훈이 간직하다. <216~217쪽>

구구단

2011년 부여 쌍북리에서 발굴된 구구단 목간은 백제 시대의 셈법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중략) 9단부터 시작해서 8단, 7단, 6단, 5단, 4단, 3단, 2단까지 단을 나누어 구구단을 기록한 것은 중국과 일본의 경우도 비슷하다. 아마도 비슷한 숫자 기록 방법을 동아시아 국가들이 채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구구단이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파된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249쪽>

궁남지에서

남근형 상징물이 제사 의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남근형 상징물들이 제사 의례를 행한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점에서도 추정 가능하다. 풍요와 다산, 나아가 길에 대한 제사와 관련된 행위를 위해 남근형 상징물을 사용했고, 이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기원했을 것이다. 부여의 논치 유적, 궁남지, 능산리사지에서 남근형 상징물이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279쪽> 


『목간으로 백제를 읽다』
백제학회 한성백제연구모임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펴냄│360쪽│2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