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와 막심’이 ‘퀴어’와 ‘성장’을 이야기하는 방법
‘마티아스와 막심’이 ‘퀴어’와 ‘성장’을 이야기하는 방법
  • 송석주 기자
  • 승인 2020.08.14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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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에 돌란 감독,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 스틸컷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마티아스’(프레이타스)와 ‘막심’(자비에 돌란)은 죽마고우다. 그들은 우연히 친구 동생의 영화에 출연해 키스를 하게 된다. 그런데 키스 이후 두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자비에 돌란이 감독 및 주연을 맡은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은 바로 그 감정 앞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영화이며, 동시에 그 감정 앞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청춘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기록한 영화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답’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책 『젠더 트러블』에서 젠더(gender)는 ‘수행적’(performative)이라고 선언한다. 그에게 젠더는 “일련의 지속적인 행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후천적이고 구성적인 것, 행위를 통해 수행되는 것, 무대 위의 연극적 행위처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연출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젠더가 수행적이라는 뜻은 자신이 원하는 정체성을 스스로 구성하고 만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버틀러의 사유를 빌려 다시 <마티아스와 막심>을 표현하면, 이 영화는 마티아스와 막심이라는 두 남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스스로 구성하는 과정에 놓인 퀴어 영화(queer cinema : 동성 간의 애정을 내용으로 하는 영화)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명료하게 규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이한 운동성을 지닌 영화. 특히 어지러울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는 자비에 돌란의 카메라는 마티아스와 막심의 존재론적 상태와 맞물리며 우울하면서도 경쾌한 영화적 리듬을 구현해낸다.

그 리듬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동력은 이 영화가 이차프레임(프레임 안의 프레임)을 활용해 두 인물의 관계, 나아가 영화의 전반적인 스타일을 정립해나가는 방식에 있다. 이차프레임은 스크린 내부에 위치한 여러 가지 사각 모양의 틀(창문, 유리, 거울 등)을 말한다. 이차프레임은 피사체를 부각하고,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암시하는 등 영화이미지의 물리적·심리적 상태를 전면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자비에 돌란 감독,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 스틸컷

첫 번째 이차프레임은 영화 초반부에 마티아스가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직사각형(이차프레임)을 만들어 막심의 눈에다 대고 “클로즈업 준비됐어?”라고 묻는 장면에 있다. 마티아스의 손가락에 의해 만들어진 이 이차프레임에는 곧 호주로 떠나는 막심에게 이제 모든 짐(막심에게는 알코올 중독에 걸린 어머니가 있다.)을 훌훌 털어버리고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살아가라는 마티아스의 격려가 있다. 마티아스의 물음에 막심은 “그래, 준비됐어”라고 대답한다.

흥미로운 것은 마티아스가 막심에게 건넨 이 이차프레임이 영화가 진행되면서(정확히 말하면 키스신 이후) 오히려 마티아스 자신의 얼굴로 향하는 이차프레임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영화상에서 정체성의 혼란으로 ‘더’ 불안해하는 사람은 막심이 아닌 마티아스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영화가 대부분 막심의 시선으로 전개되면서도 왜 제목이 ‘막심과 마티아스’가 아니라 ‘마티아스와 막심’인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클로즈업으로 바라봐야 할 사람은 막심이 아니라 마티아스인 것이다.

두 번째 이차프레임은 친구들이 마티아스와 막심의 키스신 촬영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 있는 장면에 있다. 그들은 창문(이차프레임) 너머로 키스신을 준비 중인 마티아스와 막심을 구경한다. 그러니까 화면상으로 전경에는 친구들이, 중경에는 창문이, 후경에는 마티아스와 막심이 있다. 마티아스는 촬영이 들어가기 직전에 공을 창문으로 던지며 친구들이 구경하지 못하게 화를 낸다. 친구들은 도망가지만 창문은 깨지지 않는다. 퀴어한 곳과 퀴어하지 않은 곳 사이에 위치한 벽은 그만큼 견고한 것이다.

다음은 마티아스와 막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세상 사이의 이차프레임이다. 키스신 이후 어색해진 마티아스와 막심은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들의 ‘진짜’ 감정에 이끌려 키스를 한다. 내부에서 그들을 포착하고 있던 카메라는 굳이, 수고스럽게 비 내리는 바깥으로 나와 비닐로 가려진 불투명한 창문(이차프레임)을 경유해 마티아스와 막심을 바라본다. 이는 퀴어의 사랑이 여전히 세상과 떨어진 채로, 흐릿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은유하는 시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자신의 진짜 감정에 이끌려 키스를 하면서도 마티아스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는 자신에게 더욱 밀착하는 막심을 향해 “그만, 그만해. 모르겠어. 이건 우리가 아니야”라고 말하며 키스를 멈춘다. 반면에 막심은 “우리 얘기하자. 얘기해야 해. 이해하고 싶어”라며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마티아스는 그런 막심의 요청에 대꾸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마지막 이차프레임은 영화의 엔딩 장면, 바로 마티아스와 막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현관문이다. 키스 이후 아무런 연락도 주고받지 않은 그들. 마티아스에게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호주로 떠날 채비를 하는 막심은 우울하다. 하지만 막심이 짐을 챙겨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 앞에 거짓말처럼 마티아스가 서 있다. 마치 어둠 속의 벽장을 열고 나오는(come out of closet : 커밍아웃을 뜻함) 듯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웃으며 서 있는 마티아스와 그를 보며 애써 웃음을 감추는 막심을 차례로 비추다가 엔딩 크레디트를 올린다.

이처럼 <마티아스와 막심>은 이차프레임을 통해 퀴어와 성장이라는 테마를 동시에 다각도로 형상화한다. 어쩌면 진정한 성장은 앞으로 나아가고, 몸집을 키우고, 점점 더 높아지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을 가로막고 있던 여러 프레임들을 하나씩 벗겨내며 ‘본연의 나’로 회복해가는 과정 속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티아스와 막심>은 바로 그 지점을 영화적으로 유려하게 펼쳐내 보이고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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