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사는 그책]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포를 보여줄게
[니가 사는 그책]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포를 보여줄게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8.12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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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다(buy)는 말에 어쩐지 산다(live)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 엉뚱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사면서 그 책에 들어가 살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영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존 버거가 “이야기 한 편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살아보는 게 된다”고 말했듯 말이다.
책을 산다는 행위가 그저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선다면 우리는 그 구매 행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니가 사는 그책. 어느 가수의 유행가 제목을 닮은 이 기획은 최근 몇 주간 유행했던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을 더듬어본다. <편집자 주>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서점에 쏟아져 나오는 호러 소설 중에서도 올여름 특히 인기를 끄는 책이 있다. 민음사가 ‘워터프루프 북’으로 내놓은 『괴담』이다. 김희선, 이유리 등 등단작가 열두명이 내놓은 열두 개의 괴담이 담겼는데, 걸출한 작가들이 괴담을 쓰면 얼마나 공포스러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들은 특히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발군의 문장력으로 상상할 수 있는 극한의 공포를 표현해낸다. 독자는 그 문장들을 통해 공포 영화 같은 영상 콘텐츠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이미지들을 머릿속에 그려낸다. 비유하자면 그 문장들은 마치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보가트’(Boggart) 같다. 상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변해 겁을 주는 생물 보가트 앞에 선 마법사처럼, 독자는 자신이 제일 무서워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잠시 그 문장 몇 개를 감상해보자.   

      
#김희선 「이것은 괴담이 아니다」
   
수학여행 중에 버스 사고가 일어난다. 오토바이를 탄 두 사람이 버스와 충돌해 머리가 깨진다. 뇌수가 흘러내리는 버스 창밖으로 구조대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학생들. 밖은 어두워지고 저 멀리 숲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그래, 거기엔 두 사람이 서 있었어. 머리가 부서져 버린 두 남자. 그들은 흘러내리는 뇌수를 손으로 쓸어 모아 자기들 목의 뚫린 부분에 연신 주워 담고 있었지. 거기선 동맥과 정맥이 찢긴 채 함부로 자란 잡초처럼 솟아났고, 검푸르게 식어 버린 피가 시취를 풍기며 뚝뚝 흘러내렸어.” 

#이유리 「따개비」

여행 중 방파제에 다리가 쓸려 상처가 난 연인 연희. 그런데 그녀가 여행 후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린다. 며칠 뒤 찾아간 연희의 집에서는 고인 물비린내 같은 악취가 진동하고, 어두컴컴한 방 침대 위, 연희가 홀로 앉아 있다. “이리 와서 이불을 치워봐”라는 연희의 말에 나는 다가가 이불을 걷고,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처음에는 그 아래 있는 것이 바위 덩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자, 끔찍한 악취를 풍기는 그것들은 따개비였다. 연희의 허리 바로 아래쯤부터 발끝까지 온통 따개비가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손바닥만 한 것도 있었고 손톱만 한 것도 있었으나 모두 제각기 모양은 달랐다. 구멍이 뚫린 것, 우둘투둘한 것, 구불구불한 것들이 제각기 껍질을 조금씩 벌렸다 오므렸다 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임선우 「벽」

바이러스 방역 소독을 위해 방문한 평범한 단독주택에서 D와 나는 어쩐 일인지 집 안에 수십 개의 공기청정기가 놓여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창가 소독을 위해 커튼을 열자 뒷마당에는 엄청난 크기의 흰 벽이 세워져 있다. 창문을 열자 구더기를 깨무는 생쥐의 냄새 같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약한 악취가 쏟아져 들어온다. 절대 뒷마당에 나가지 말라는 주인의 만류에도 소독을 위해 뒷마당에 발을 디딘 둘은 곧 그 흰 벽의 정체를 알게 된다. 

“거대한 벽이 뒷마당을 부수고 솟아오르고 있었다. 땅 아래 묻혀 있던 벽은 싯누랬고, 점액질로 뒤덮인 듯 끈적끈적해 보였다. 그곳에서 올라오는 역겨운 냄새가 이번에는 위장을 파고들었다. 정신없이 헛구역질을 하는 사이 또 다른 벽이 공중에서도 내려오고 있었다. 거대한 윗벽과 아랫벽이 하나로 맞물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저것은 벽이 아니라 이빨이었다. 유난히 물렀던 땅은 이빨을 지탱하는 축축한 잇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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