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억수로 내리는 비를 보고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는 이는 없을까. 부자의 집에서 몰래 술판을 벌이는 기택의 가족 앞에 내리는 비는 그저 시원하기만 하다. 그러나 기택의 가족이 부자의 집에서 도망쳐 반지하로 내려왔을 때 그 비는 위에서 아래로 찍어 누르는 재앙이 돼 삶의 터전을 부순다.
영화 ‘기생충’을 비현실적 픽션으로만 바라본다면 오산. 이번 폭우로 수많은 ‘기택네’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폭탄이 터지면 가장 먼저 수해를 입는 36만 반지하 가구(2015년 기준) 중 95.8%(34만8,782가구)가 수도권에 밀집돼 있는데, 이번 폭우로 수도권 대부분 지역은 물에 잠긴 상태다. 반지하는 저소득층의 대표 주거 형태인 이른바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중 그 비율이 가장 높고, 상대적으로 가족 단위 거주가 많다. 서울시가 지난해 조사한 ‘아동 주거빈곤 가구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1.6%가 반지하에 산다고 응답했다.
재난이 찾은 곳은 반지하 가구만이 아니다. 재난은 아래로 흐르며 특히 빈곤한 자를 압살했다. 지난 2일에는 경기도 이천의 한 저수지가 붕괴되면서 1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재민대피소 수용 인원 가운데 80% 이상이 이주노동자인 상황. 폭우로 잠긴 농장에 취업 중인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는 대부분 저지대에 위치한 컨테이너였고, 용기 내 돈 벌러 온 이국땅에서 그들은 공포를 경험하게 됐다.
지난달 23일 전남에서는 시간당 60mm의 빗줄기에 오래된 지붕이 주저앉으며 한 아이의 공부방을 덮쳤다. 경기도의 인적이 끊긴 축사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한 아이의 집은 저지대에 위치해 매년 장마철이면 수해를 입었고, 이번 장마로 완전히 침수됐다. 매년 이맘때 습기가 차서 벽지와 장판이 뜨는 반지하에 사는 한 고등학생의 집은 올해 싱크대가 역류해 물바다가 됐다. 물에 잠긴 가족의 소중한 물건들은 썩어버렸다. 이들의 부실한 안식처는 속절없이 내리는 비를 피하기에 충분치 못했다.
존 C. 머터 컬럼비아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책 『재난 불평등』에서 “자연재해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재난은 목숨을(때로는 비극적일 만큼 엄청난 목숨을) 앗아가는데, 가난한 지역에서는 그 수가 더 커진다는 것”이라며 “부자는 재난으로부터 멀리 피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빈곤의 덫에 갇히거나 덫 안쪽으로 깊숙이 미끄러져 들어간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언론의 관심이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8일 수해복구 작업을 마치고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농지가 다 잠겨서 피해가 막심합니다. 어떤 농기구들은 수억원에 달하는데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살던 집이 산사태로 무너진 분도 계셨습니다. 삶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을 텐데 저희에게 그저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중략) 오후 작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차 안에서 기자님들의 전화를 받습니다. 언론은 오늘도 ‘원피스’를 묻습니다.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실제로 언론은 류 의원의 ‘국회 원피스’ 논란 기사를 수해 기사보다 더 많이 쏟아냈다.
다음으로, 국회의 관심이다. 특히 야당에서는 어떻게 하면 수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울까 생각하기보다는 수해의 원인을 찾으며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기에 바빠 보인다. 당장 누군가의 삶이 무너져가는 마당에 의원들은 “정부의 태양광 사업 때문이다” “4대강 때문이다” 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억하자.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수많은 ‘기택네’를 구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