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도서정가제 개편을 위한 민관협의체의 합의안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3년마다 도서정가제의 타당성을 검토해야 하는 규정에 따라 문체부 주도로 구성된 민관협의체(한국출판인회의 등 출판계 3곳, 지역서점과 대형오프라인서점 등 유통계 4곳, 소비자 단체 2곳, 전자출판업계 4곳)는 지난해 7월부터 도서정가제 개편안을 논의해왔다.
이에 ▲재정가(발행 후 일정 기간이 지난 책에 한해 출판사에서 임의로 책의 가격을 재결정하는 것) 허용 대상을 ‘발행 18개월 이후’에서 ‘12개월 이후’로 확대 ▲지역서점 보호를 위해 국가·지방자치단체·도서관 등 공공기관에는 책의 가격할인을 10%까지만 제공하도록 제한 ▲새 책을 중고로 유통하는 행위 방지 등에서 합의에 근접했다. 이 외에도 큰 틀에서 기존 정책을 유지·보완하는 쪽으로 공감대가 이뤄져 법률적 처리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체부가 돌연 민관협의체의 합의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에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를 회장으로 하는 한국출판인회의(이하 출판인회의)는 지난 6일 입장문을 내 “문체부 주도하에 구성된 민관협의체가 총 16차례 회의를 거쳐 만들어낸 개정안은 도서정가제 보완을 위한 출판계의 상호 이해와 조정의 결과물인데 지난 7월 말 문체부가 이런 과정에 대해 부정하고 재검토하려 한다”며 “도서정가제가 훼손되거나 또 다른 저의가 있을 때는 총력을 다해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출판인회의는 또한 문체부가 재검토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으며, 일부 단체에만 구두로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문체부는 이러한 비난에 대해 ‘소비자 후생’을 고려한 재검토라고 설명했다. 민관협의체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도서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을 도서정가제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다.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도서 가격에 대한 국민청원이 올라오는 등 소비자의 불만이 큰 상황에서 할인율뿐만 아니라 도서정가제 적용범위(훼손된 도서, 장기재고도서의 추가 할인) 등 여러 가지 옵션들을 추가적으로 고려해서 최종 개선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민관협의체의 합의사항을 파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합의사항을 개선안에 우선적으로 반영하되 추가적인 사항을 검토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단체에만 구두로 통보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아니라 일부 단체의 질의에 답한 것”이라며 “출판인회의 질의서는 답변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문체부는 재검토 기한인 오는 11월까지 도서정가제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민관협의체에서는 “이럴 거면 민관협의체 구성은 왜 했나?”라는 비판이 나온다. 할인율과 도서정가제 적용범위 역시 민관협의체에서 합의된 사항이라는 것이다. 또한, 애초에 민관협의체에 소비자단체가 포함돼있는데 ‘소비자 후생’을 고려한 재검토라는 설명이 독단이라는 비난도 인다. 문체부의 재검토안을 우려하는 출판·문화단체는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한편, 문체부와 민관협의체의 갈등에서 세계사의 몇몇 장면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오늘날 헌법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받는 대헌장은 모든 귀족들의 협의에 의해 만들어졌고, 존 왕이 이에 서명했으나 바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이후 왕이 그것을 뒤집어버렸기 때문이다. 과거 프랑스 혁명 때도 시민에 의해 개혁적인 법안들이 만들어졌고 루이 16세가 이를 승인했지만 이후 특권층과 왕은 다시 과거로 회귀하려 했고 이에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두 장면 모두 시민의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 권위적인 태도와 불통에 의해 벌어졌다. 문체부의 적절한 대응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