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영은 왜 잔혹동화를 썼을까?… 어두운 동화의 힘
고문영은 왜 잔혹동화를 썼을까?… 어두운 동화의 힘
  • 김승일 기자
  • 승인 2020.08.07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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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고문영(서예지) [사진= tvN]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인기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동화작가 고문영(서예지)은 “동화란 현실 세계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역설적으로 그린 판타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동화의 이런 어두운 면에 열광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고문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의 어두운 교훈을 도출해낸다. 가령 그에 따르면 『흥부전』은 과거 장남에게만 행해지던 유산상속 문제를 비판한다. 흥부가 장남이 아니었기에 가난했다는 설명이다. 『미운 오리 새끼』의 교훈은 “남의 새끼 키워봐야 헛수고니, 네 새끼 간수나 잘해라.” 『인어공주』의 교훈은 “약혼자 있는 남자를 넘보면 천벌을 받는다.” 『미녀와 야수』는 스톡홀름 증후군을 다룬 동화다. 저주를 받아 성에 홀로 살게 된 야수가 인질로 성에 들어온 벨이라는 아가씨를 자기 방식대로 길들인다. 고문영은 이렇게 설명한다. “평소엔 이기적이고 거칠게 굴던 야수가 아주 가끔 호의를 베풀고 살짝 미소만 지어줘도 순진한 벨은 야수에게 감동을 하죠. 아, 내가 이 외로운 야수를 사랑으로 보듬어줘야겠구나, 나만이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어.”      

극중 고문영이 쓴(실제로는 작가 조용이 쓴) 베스트셀러 그림동화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과 『좀비 아이』 『봄날의 개』 역시 어둡다.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은 나쁜 기억 때문에 매일 밤 악몽을 꾸는 소년이 주인공이다. 더 이상 악몽을 꾸기 싫은 소년은 마녀에게 나쁜 기억들을 지워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나쁜 기억이 지워진 소년은 더 이상 행복해하지 못 한다. 행복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좀비 아이』에는 엄마를 먹어버린 좀비가, 『봄날의 개』에는 너무 오래 묶여 있어서 목줄 끊는 방법을 잊어버린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세권의 책은 최근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목록 상위권에 올랐다.    

그런데 드라마가 고문영을 통해 그려낸 동화의 어두운 면은 사실 동화라는 콘텐츠의 본모습이기도 하다. 과거 소설가 김영하는 한 방송에서 “동화의 기본적인 목적은 아이들에게 겁을 주는 거다. ‘세상이 무서우니까 조심해라’(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흔히 보는 밝은 동화들의 원작은 대부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곤란할 정도로 공포스럽고 잔인하다.  

가령 그림 형제가 쓴 『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의 두 의붓언니는 왕자가 공주를 찾기 위해 가져온 구두를 신기 위해 자신의 발뒤꿈치를 잘라낸다. 새들이 왕자에게 알려줘서 그 사실이 들통나게 되는데, 이 새들은 또 신데렐라의 결혼식에서 두 의붓언니의 눈을 파먹는다. 『백설공주』는 사실 치정극이었다. 백설공주를 괴롭히는 계모는 원작에서는 친어머니인데, 백설공주를 괴롭힌 이유는 백설공주가 자신의 남편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백설공주는 나중에 일곱 난장이와도 잠자리를 같이 하는 관계가 된다. 독사과를 먹고 잠이든 백설공주에게 왕자가 키스한 이유는 그가 죽은 사람에게 성욕을 느끼는 성도착증자(네크로필리아)였기 때문이다. 왕자와 결혼 후 백설공주는 왕자에게 복수를 하게 해달라고 조르고, 이에 친모는 불에 달궈진 구두를 신게 된다. 사족으로, 오늘날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를 비롯한 많은 동화들이 원작과 거리가 멀어진 이유는 디즈니의 영향이 크다. 

“자, 오늘 수업의 결론, 동화는 꿈을 심어주는 환각제가 아니라, 현실을 일깨워주는 각성제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동화 많이 읽고, 제발 꿈 깨세요.” 정신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수업에서 고문영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 수업에서 충격을 받은 환자들은 무언가를 깨닫고 점차 치유된다. 충격을 받고 무언가를 깨닫는 것은 독자도 마찬가지다. 동화의 어두운 면이 밝은 면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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