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만 27세 유방암 환우가 건네는 작은 위안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
[책 속 명문장] 만 27세 유방암 환우가 건네는 작은 위안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
  • 전진호 기자
  • 승인 2020.08.05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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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전진호 기자] 만 27세 유방암 환우.

피하고 싶은 단어들로 만든 조합이지만 나를 설명할 때 이보다 완벽한 말은 없을 것이다. 직장과 인간관계가 주된 고민거리였던 평범한 직장인, 가까운 사람들과 맥주 한 잔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던 만 27세의 겨울이 이토록 차가울 줄이야. 
암 2기로 죽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를 연이어 받는 동안 사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다. 함께해주는 가족들이 있었음에도 온전히 혼자 이겨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요즘 젊은 암 환자가 많아졌다고 들었는데 내 주변에는 없었다.

블로그에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렸다 보니 주변에 알리는 문제가 은근 고민거리였다. 분명 위로 받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나 선・후배, 직장동료 그 누구에게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민만 하다가 결국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나의 불행이 가벼운 가십이 될 것만 같았다. 술 마시고 놀 땐 만날 사람이 많았는데, 막상 힘들 땐 기댈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투병일기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내용은 주로 치료 과정의 고통스러움과 남에게 말하기 어려웠던 속내였다. 동시에 표준 치료가 끝나면 하고 싶은 것들을 적으며 매일 나 자신을 다독였다.
‘치료가 끝나면 다시 예전처럼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표준 치료가 끝나고 보니 그것이 곧 완치의 의미는 아니었다. 모든 것이 만만치 않았다. 10kg이 넘게 불어난 체중과 민둥산 같은 머리, 누가 봐도 환자인 내 모습에 우울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현실적인 문제 역시 괴로웠다. 다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어쩌지?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최소 5년 이상 재발에 관한 걱정을 안고 살아야 한다니,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항암 치료를 받느라 살이 찌고, 체력이 약해졌고, 자유를 빼앗겼다. 항암 주사 부작용으로 손톱과 발톱이 까맣게 죽어서 빠져나갔을 때, 방사선에 노출된 가슴이 까맣게 탔을 때 나는 처절하게 삶을 원했다.

 Si vis vitam, para mortem.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이상하게도 완치 후를 생각할수록 삶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것들’ 의 다른 이름은 곧 ‘못해보고 죽는다면 아쉬울 것들’ 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여행이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언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잊고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처음 비행기 표를 끊은 날엔 온 가족이 걱정했다. 환자가 말도 안 통하는 곳으로 여행을 간다니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꼭 가고 싶었다. 시차가 나는 곳에서는 약을 먹는 시간마다 꼭 전화 하겠노라 약속을 하고서야 짐을 꾸릴 수 있었다.

블로그에도 걱정과 염려, 격려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매일 같은 시간에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 떠나는 장기 여행. 어쩌면 젊은 날의 투병 기간을 보상받기 위해 악착같이 세상을 쏘다녔는지도 모르겠다. 그 기록이 어느새 열 손가락으로도 세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낯선 곳에서 다양한 경험이 쌓일수록 나의 내면은 단단해졌다. 이제 가상의 공간에 혼잣말처럼 기록했던 것들을 책으로써 현실에 남기고 싶다. 

죽음 앞에서 삶의 유한성을 조금은 빨리 느꼈던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14~17쪽>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
에피 지음│행복우물 펴냄│310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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