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뻔지르르한 정치인의 언어?... “말이라도 잘해야”
말만 뻔지르르한 정치인의 언어?... “말이라도 잘해야”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8.0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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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정치인의 발언은 듣는 이의 마음을 격동케 하는 선동의 언어인 경우가 많다. 소속 정당과 이해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 결집을 위한 뾰족하게 날이 선 언어 말이다. 다만 최근 그런 편견을 깨뜨리는 국회의원 연설이 오래 주목받고 있는데, 그 주인공은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이다.

윤 의원이 국회 본회의 연설에 나선 건 더불어민주당의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단독 처리’(국회 본회의 통과)가 이뤄졌던 30일. 표결에 앞서 5분 연설에 나선 윤 의원은 “저는 임차인입니다. 제가 지난 5월 이사했는데 이사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집주인이 2년 있다가 나가라고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임대차법의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상한 규정을 보고 마음을 놓았을까, 그렇지 않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4년 뒤부터는 꼼짝없이 월세살이겠구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저금리 시대로 전환한 지금 전세제도는 축소될 운명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번 임대차법으로 인해 급작스러운 소멸의 길로 밀어 넣어졌습니다. 아직도 전세 선호가 많은 상황에서 큰 혼란과 불편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라며 “1990년 임대계약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법이 통과됐을 때, 1989년 말부터 전세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 전년 대비 30%, 1990년에는 24%가 올랐다. 이번에는 임대료 인상도 5% 이하로 묶었으니 임대인이 뭘 할 수 있겠냐고? 임대인 입장에서는 아들이나 딸한테 들어와 살라고 하거나 월세로 돌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윤 의원은 해당 법안을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를 꼬집었다. 법안이 진행되기 전 상임위원회 내 소위원회의 축조심의(한조항씩 낭독하며 의결)없이 단독으로 본회에 상정한 것을 비판한 것. 윤 의원은 “적어도 남의 인생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에 대해 법을 만들 때는 최선을 다해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라고 있는 것이 상임위 소위의 축조심의입니다. 축조심의과정이 있었다면, 저라면, 임대인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줄 것인지, 고가 전세의 부자 임차인까지도 보호 범위에 포함시킬 것인지, 근로소득 없이 임대로 생계를 꾸리는 고령 임대인은 어떻게 배려할 것인지 등을 같이 논의했을 것”이라며 “이 법을 대표 발의한 의원들, 소위 축조심의 없이 입법 과정을 졸속으로 만들어버린 민주당, 모두! 우리나라 부동산정책의 역사에서, 민생정책과 한국경제 역사에서 죄인으로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해당 연설에 대중은 격한 호응을 내보였다. 연설 영상이 각종 커뮤니티에 공유돼 조회 수가 수만 건을 넘어섰고, 동료 의원과 누리꾼의 호평이 이어졌다. 이미지 전략 전문가인 허은아 미래통합당 의원은 윤 의원의 연설을 영화 <킹스 스피치>로 잘 알려진 영국 국왕 조지 6세 연설에 빗대어 “명연설의 핵심은 ‘진정성’과 ‘공감’”이라며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시각이 55%, 청각이 38%, 언어가 7%의 비율을 차지한다. 윤 의원의 (연설 당시 느껴졌던) 떨림은 긴장이 아닌 진정성 담긴 ‘카리스마’였다”고 칭찬했다. 윤 의원 개인 블로그에도 “간만에 사이다 같은 발언을 들었네요” “명확한 논리와 차분한 어조로 국민을 감동시켰습니다” 등 호평 댓글 3,000여개가 달렸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역시 “이 연설은 두 가지 점에서 평가합니다. 첫째 비판이 합리적이고, 둘째 국민의 상당수가 가진 심정을 정서적으로 대변했다는 점”이라고 호평했다.

정치인 연설로는 이례적으로 윤 의원의 연설이 호평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수사학』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밝히는 ‘설득의 3요소’는 객관적 논리로 무장한 ‘로고스’, 감성을 자극하는 ‘파토스’ 그리고 화자가 갖춘 신뢰도인 ‘에토스’인데, 이번 윤 의원의 연설에선 이 모든 요건이 엿보였다.

먼저 로고스. 윤 의원은 연설에서 전세제도가 축소되는 추세임을 인정하면서도 정부 여당의 부동산정책이 초래하는 급작스러운 변화가 시장 혼란을 일으킬 여지가 많다는 사실을 과거 사례를 통해 논리적으로 지적했다. 논리보다는 날카로운 언어로 감정을 자극하는 기존 정치인들의 선동적 언어와 대비되는 대목이었다.

다음은 파토스. 윤 의원은 전세제도가 소멸해 가는 세태를 인정하면서도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따른 문제점을 임대인·임차인의 입장에서 지적했다. 현 부동산정책을 바라보는 다수 국민의 혼란스러운 마음에 공감하면서 그들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해, 긍정 여론을 끌어낸 것이다. 또 과거 기성 정치인들이 선보였던 표독스러운(?) 언어와 표정이 아닌, 초선 의원의 순수함(?)이 엿보이는 모습도 긍정 여론에 힘을 보탰다.

마지막은 에토스. 에토스는 화자를 향한 청자의 호감·신뢰를 뜻하는데, 그 점에서 윤 의원은 전문가다운 면모가 빛을 발했다. 윤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해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마친 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과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지낸 경제학자로, 경제 분야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 누리꾼은 “과거 언론에 나오는 정치인들의 언어에선 혐오와 불신이 가득 느껴졌다. 모두가 국민을 외치지만, 정작 그 속에서 국민은 없고, 정치 언어와 소속 정당의 이익 추구만 가득했었는데 윤 의원의 연설은 색달랐다. 뭔가 단백한 맛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언론도 정치인끼리 치고받는 자극적인 보도보다 이런 건설적인 토론에 더 주목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책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말로 신뢰를 주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화자의 성품으로 인한 신뢰는 청중이 그를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도록 화자가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말할 때 생긴다. 청중으로 인한 신뢰는 화자의 말에 청중이 어떤 감정을 지니게 됐을 때 생긴다. 말 자체로 인한 신뢰는 화자가 각각의 사안과 관련해 진정으로 설득력 있는 요소들, 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을 드러낼 때 생긴다”고 연설의 기술을 소개했다. 윤 의원의 연설이 반론이 불가할 정도로 완벽하다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정치인이 말로 신뢰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모처럼 호평을 얻었다는 점에서 내포한 함의가 남다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말만 뻔지르르하게 하는 정치인을 향한 국민 피로도가 크지만, 말이라도 (진정성을 갖춰)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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