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칼럼] 삶의 성찰을 위한 세 가지 질문
[박흥식 칼럼] 삶의 성찰을 위한 세 가지 질문
  • 박흥식 논설위원
  • 승인 2020.08.03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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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삶의 재충전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인생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배워야 할지도 고민거리입니다. 이럴 때 우리의 동양 고전은 흔들리는 삶의 중심을 잡아주고 고달픈 삶을 지탱해 줍니다.

나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나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삶의 깊은 통찰과 인생의 방향을 잡아줄 고전 속 성찰의 명구와 질문을 세 가지 소개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묵이지지’(黙而識之)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좋은 말씀을 가슴속에 묵묵히 간직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책을 한번 읽고 다 이해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며 더 이상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독해하는 것과 마음에 새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배우고 읽은 것을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단지 일회적인 지식에 그치고 맙니다.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우리 모두가 새길만 한 묵이지지 한 편이 있습니다. 그 것은 ‘독처무자기’(獨處毋自欺)입니다. 그 뜻은 ‘홀로 있는 곳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곳에서는 아무래도 타인의 눈과 귀를 의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남이 볼 때는 그들의 눈과 귀를 의식해서 행동을 조심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이 풀리고 느슨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혼자(獨) 있는 곳(處)에서 더욱 삼가야 한다는 것이 옛 선현들의 기본 철학이었습니다. 특히 공직자나 유명인들이라면 이 독처무자기의 실천이 필요 합니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이 ‘독처무자기’의 철학을 실천하고자 애썼다고 합니다. 조선 중종 때 문신이었던 임권 선생은 ‘세상 모든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독처무자기를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고 합니다. 다산 정약용이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학문에 정진할 수 있었던 것도 독처무자기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군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내로남불이란 유행어처럼 남이 보는 앞에서는 온갖 선행 노력을 기울이는 척하다가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양심을 버리고 윤리에 어긋난 행동을 일삼곤 합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신뢰를 잃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남과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이 신뢰를 얻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학이불염’(學而不厭)입니다. 배움에 싫증 내지 않으며 배움이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배움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 사회는 정보의 결핍이 아닌 정보의 과잉 상태입니다. 학교나 교육기관이 아니라도 미디어를 통한 다양한 교육 기회가 널려 있습니다.

배움이 있는 삶은 1퍼센트의 승자와 99퍼센트의 패자가 상존하는 신자유주의의 세상에서 각자도생의 생존 위협과 절박하고 불안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배움이 계속된다면 미래의 삶의 대처도, 지속 가능한 미래전략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배움은 삶의 에너지입니다. 배움은 삶의 진정한 충전입니다. 절박한 현실에 고군분투하는 모든 생활인은 살아있는 지혜를 책과 미디어를 통한 배움에서 채울 수 있습니다.

고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한 구절입니다. 노자가 말한 ’견소왈명(見小曰明)‘입니다.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명철한 지혜를 뜻합니다. 또한, 사소한 것을 보고도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 낼 수 있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작은 것을 중시하라는 것입니다.

과거 사람들은 먼 곳에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재물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먼 곳에 있는 행복입니다. 먼 곳에서 행복을 구하는 사람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행복을 곧잘 놓치고 맙니다. 그러나 먼 곳의 큰 행복보다는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행복을 찾아내고 누릴 수 있으면 그 작은 행복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심플하게 사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으며, 미니멀리즘, 소확행이라 이름 붙이고 작은 것을 볼 줄 알고, 작은 행복을 찾아 누립니다.

세 번째 물음은 회인불권(誨人不倦)입니다. 남을 가르침에 있어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논어의 술이편에 나옵니다. 공자는 사람을 조금도 권태를 느끼지 않고 성심성의로 교화하라고 가르칩니다. 부지런히 배우고 배운 것을 가슴에 새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만을 이롭게 할 뿐입니다. 남에게 전달해 바른길로 인도하고 영향을 끼친다면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평소 습관은 세 가지 질문이 요구하는 방향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배우는 것을 포기하거나 즐겁게 여기지 않으며, 한 번 배운 것을 다시 돌아보지 않고, 자기가 배운 것을 남에게 알려주는 데에도 인색합니다. 그러니 세 가지를 동시에 지킨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세 가지 질문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고전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명확합니다. 남이 보든 보지 않든 나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이웃을 생각하고 교감하며 작은 것을 소중히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갖게 될지 어떨지 알 수 없는 큰 행복과 더 많이 가지려고 욕망하다 작은 행복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랍니다. 내 가까이 놓여있는 일상의 작은 기쁨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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